Republic F-84 Thunderjet
소련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양한 전투기를 만들고 있을 미국에서도 다양한 제트 전투기들이 개발되었다. 다만, 약간의 개량의 거쳐 새로운 항공기를 우후죽순 만들어내는 소련과 달리 미국은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완성도 높은 전투기들을 개발해내는 중이었다.
1944년, 제트 엔진과 P-80이 등장할 무렵, Republic에서도 P-47를 대체할 차세대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이때 Republic은 P-80이 원심식 J33 엔진을 사용한 것과 달리 미국 최초의 축류식 제트 엔진 General Electric의 J35 엔진을 사용해 날씬한 항공기를 구상했다. 이후 1944년 9월 11일에는 미 육군 항공대가 제시한 구체적인 요구 조건에 맞춘 설계안을 제출했고 Republic은 동년 11월 11일에 3대의 시제기를 제작해달라는 주문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때 1945년 1월, 미 육군 항공대는 처녀비행도 실시하지 않은 전투기를 100대 가까이 주문해버렸고 Republic은 별다른 입찰 경쟁 없이 사업을 따냈는데, 이 대목에서 미 육군 항공대가 Republic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Republic은 유럽 전선에서 폭격기를 호위할 용도로 P-47 Thunderbolt를 개발해 미 육군 항공대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축류식 제트 엔진을 사용해 P-80보다 날씬하고 날렵한 동체를 가진 P-84는 P-80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미 육군 항공대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1946년 2월 28일, J35 엔진을 장착한 채 첫 비행을 마친 XP-84A는 엔진 생산과 기체 양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1947년까지 배치되지 못한 채 시험 비행만 실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1947년 9월, 미 육군 항공대가 미 육군에서 분리되어 미 공군(USAF)으로 제편되면서 미 육군 항공대의 제식 명칭으로 전투기에 사용되었던 ‘Pursuit’ 대신 ‘Fighter’를 의미하는 F를 사용하게 되면서 P-84는 F-84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다행히 1947년 12월부터 P-84A를 개량한 F-84B가 미 공군에 인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F-84B는 마하 0.8을 넘기면 날개가 뒤틀리고 5.5G 이상의 기동을 하면 동체 표면이 우글거리는 등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1948년 5월에는 모든 항공기가 비행 금지 조치 (ground)가 내려졌다. 게다가 F-84B보다 신뢰도 높은 J35-A-13 엔진을 탑재하고 일부 공학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F-84C도 F-84B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성능을 보여주자 미 공군은 F-84 도입 자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 1949년 전작들의 주요한 결함들을 해결한 F-84D가 등장하면서 미 공군은 F-84의 도입을 중단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F-84D는 전보다 강력한 추력을 낼 수 있는 J35-A-17D 엔진을 장착하고 날개에는 더 두꺼운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등 추력과 동체를 강화했다. 그리고 높은 G를 받는 기동에서 항공기 날개에 무리를 주던 날개 끝 연료탱크(wingtip fuel tank)에 자그마한 날개를 달아 연료탱크의 안정성을 높여 날개에 가해지는 무리를 덜어주었다. 이러한 개수 작업들은 F-84D 이전에 도입된 항공기들에게도 적용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F-84E가 등장하면서 D형을 비롯한 모든 F-84가 1952년부터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작들이 물러나 빈 자리는 1949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작전 운용 능력을 갖춘 F-84E가 채워나갔다. F-84E는 추가적인 날개 보강 작업을 거쳤고 동체가 앞뒤로 조금씩 연장되었고 덕분에 더 많은 항전장비와 연료를 탑재할 수 있게 되어 항속거리가 늘어났다. 그렇게 1950년에는 한국전쟁에 B-29 폭격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채 투입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퇴익을 가진 MiG-15가 등장하면서 전투기로써의 임무는 F-86에게 맡긴 채 CAS 임무를 수행하는 전폭기로 활약한다. 이때 F-84는 3년간 총 86,408 소티에 50,427톤의 폭탄을 투하하며 전폭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다만, 한국 전쟁 동안 물밀듯 쏟아지는 F-84의 엔진 수요를 회사가 감당하지 못해 원활한 작전 수행은 어려웠었다고 한다.
한편 1951년 무렵에는 F-84의 최종형이라 할 수 있는 F-84G가 등장했다. (여기서 왜 E 다음 F가 아닌 G가 나오는지는 아래에서 설명할 것이다.) F-84G는 1951년부터 미 공군에 인도되었는데 여러모로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전투기이다. 엔진은 24.73kN에 달하는 추력을 낼 수 있는 J35-A-29 엔진이 장착되었고 항공기 중 최초로 공중 급유를 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이때 기체는 Flying boom 방식이 가능한 기종과 Probe and Drogue 방식이 가능한 기종으로 나뉘어 Flying boom 방식은 기체의 왼쪽에 공중 급유 장치가 있었고 Probe and Drogue 방식은 오른쪽 날개 끝에 공중 급유 장치가 있었다. 특히, 공중급유 장치는 단순히 항공기의 항속거리를 늘려준다는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미국은 1950년 9월 22일, 공중 급유 기능을 갖춘 2대의 F-84E를 사용해 영국에서 미국까지 세 차례의 공중 급유 끝에 무착륙 대서양 횡단을 성공해냄으로써 미국이 언제든 자신들의 항공기를 서유럽에 전개시킬 수 있음을 소련에게 과시했다. 그리고 1953년 8월, 제대로 된 공중급유 기능을 갖춘 F-84G로 다시 한번 대서양 횡단에 성공해내면서 미 공군은 해외 주요 지역에 즉각 항공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경험과 자신감을 축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F-84G가 미 공군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단발 제트 전투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F-84G는 Mark.7 핵폭탄과 함께 소련을 압박하는 용도로 상호 방위 지원계획(Mutual Defense Assiatnce Program) 하에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그리고 터키에 배치되었다.
* 앞서 F-84의 다사다난한 개발 과정을 보며 “왜 컴퓨터로 계산하거나 충분한 검증을 통해 처음부터 완벽한 항공기를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고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아니면 “소련처럼 F-84의 개발을 가차 없이 중단시키고 새로운 전투기 개발에 착수하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1940년대 중반에는 ‘컴퓨터 설계(Computer Aided Design)’이 존재하지 않았다. 실감이 안 난다면 현대 컴퓨터의 기원이자 최초의 대형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1946년에 완성되었다. 당연히 오늘날과 같은 3D 모델링이나 전산유체역학 프로그램의 사용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컴퓨터 설계는 1970년대 초에 오늘날 상용 도면 소프트웨어의 뿌리가 되는 ADAM의 등장으로 시작되었고 최초의 3D CAD 프로그램인 CATIA는 1970년대 말에 등장했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모니터가 아닌 커다란 종이 위에 설계도(blueprint)를 그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F-84는 엔진의 직경이 작고 효율이 좋은 축류식 제트 엔진을 사용했는데, 이 점도 F-84의 개발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우선, 축류식 제트 엔진은 독일이 그랬듯 효율은 좋지만 제작이 어렵다. 그리고 처음부터 기체 강도를 여유 있게 설계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J35 엔진의 추력이 약해 엔지니어들은 무게 제한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F-84는 오랫동안 구조적 결함을 안고 살았으며 나중에서야 보다 높은 추력을 만들 수 있는 엔진이 등장하면서 날개 강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기체 강도를 높일 때 엔진 또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P-80과 성능을 비교해볼 때 F-84는 P-80보다 더 많은 폭탄을 탑재할 수 있으며 더 빠르고 더 멀리 날 수 있는 등 마냥 단점만 가진 전투기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 공군은 Republic과의 계약을 바로 철회하지 않고 최대한 결함을 개선할 수 있길 바랐을 것이며 F-84를 개발하고 양산하는데 투입된 비용을 고려하면 가차 없이 도입 계획을 철회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참고로, Republic도 North American처럼 기존 P-47에 제트 엔진을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당시 P-47은 큰 내부 용적을 가지고 있어 원심식 제트 엔진도 충분히 탑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항공기에 제트 엔진을 탑재한다면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 위험 부담도 적고 개발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거라 보았다. 그리고 P-47은 이미 실전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쓸만한 제트 전투기를 손쉽게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P-47에 제트 엔진을 탑재하는 설계안은 구상에 그쳤다.
우선 생각보다 P-47에 J31 엔진을 탑재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General Electric J31엔진 대신 축류식 제트 엔진인 Allison J35을 탑재하는 것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J35 엔진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조종석 아래에 위치할 예정이었으며 전방에 프로펠러가 사라져 시야 확보가 훨씬 용이해질 것이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P-47에 제트 엔진이 탑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설계에 착수하려고 보니 P-47은 무게 중심이 앞쪽에 쏠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된 기체라서 무게 중심을 가운데로 바꿔버리면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P-47은 이미 성능을 최대한으로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제트 엔진을 탑재한다고 한들 획기적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미 공군에서 아예 새로운 제트 전투기 개발 요구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Republic은 아예 새로운 제트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했고 그 결과 F-84 Thunderjet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F-84는 오랜 실패를 겪어서인지 다양한 실험에 투입되었으며 그때마다 실험에 걸맞는 다양한 형태로 개조되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도록 하겠다.
Cover image by avionslegendaires.net
Wikipedia ,Republic F-84 Thunderjet
Wikipedia, Republic F-84F Thunderstreak
Wikipedia, Republic XF-84H Thunderscreech
Military Factory, Republic P-47 (Thunderbolt)
Military Factory, Republic F-84 Thunderjet
National Museum of the U.S. Air Force
Germania, F-84에 의한 사상 최초 무착륙 대서양 횡단 70주년
*이밖에 CAD 설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참고한 자료들이 몇 있는데 누락되었네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