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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May 25. 2021

1945년, 미국의 첫 제트 함재기

누구나 처음은 서툰 법

*글이 조금 깁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글에서 보았듯이 미 해군은 순수 제트 전투기 도입에 소극적이었고 그 대신 절충안으로 혼합 동력 항공기를 도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적일 것만 같았던 혼합 동력 항공기는 각종 결함을 일으키더니 결국 빠르게 발전한 제트 엔진 기술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마침내 미 해군은 드디어 순수한 제트 함재기 도입을 계획하게 된다.


1945년 1월 26일 McDonnell FH Phantom


미 해군의 첫 제트 함재기는 McDonnell의 FH Phantom이었다. 그리고 이 Phantom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제트 함재기이다. 지난 글에서 영국도 제트 함재기를 운용했다는 말은 언급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기종 전환 훈련 용도 및 지상 기지에서 운용하는 것이었기에 작전 수행 목적의 함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들은 대게 실망적인 성능을 보여주었기에 미 해군 역시 첫 순수 제트 함재기 개발은 메이저 회사가 아닌 1939년에 설립된 신생 회사였던 McDonnell에 맡겼다. 그래서 초기 FH Phamtom의 명칭은 1921년에 설립되어 McDonnell보다 역사가 깊은 Douglas를 뜻하는 ‘D’가 들어가 ‘XFD-1’이었다. 당연히 XFD-1이라는 이름은 1947년 6월 6일, FH-1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러한 이유 말고도 이미 1940년대 초 유수의 메이저 회사들은 이미 상당한 물량의 전시 물자를 주문받아둔 상태였기 때문에 신형 제트 함재기를 개발하고 양산할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McDonnell 역시 단순히 신생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미 해군의 주문을 받아낸 것은 아녔다. McDonnell은 비록 잘못된 엔진을 선택하는 바람에 양산에는 실패했지만, 상당히 혁신적인 항공기 XP-67을 과거에 선보이며 미 해군의 관심을 사로잡았으며 신생 회사답게 도전적인 아이디어들을 거침없이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역시 미 해군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McDonnell XP-67 @Old Machine Press

그렇게 1943년 8월 30일, McDonnell은 미 해군으로부터 제트 함재기 개발을 의뢰받게 되는데, 당시에는 충분한 추력을 낼 수 있는 제트 엔진이 없다 보니 양쪽 날개에 각각 2개의 엔진을 장착하고 이것도 모자라 또 다른 4개의 엔진은 허리 얇은 고치 안에 수납하는 괴상한 방안들까지 등장했다. 그래도 다행히 1943년 말에 Westinghouse에서 X19A(나중에 J30으로 바뀜)을 개발해내면서 Phantom의 모양은 2개의 엔진이 날개 뿌리에 장착되는 설계안이 최종 채택된다. 이때 엔진은 날개 뿌리 안에 부드럽게 삽입되어 간섭 항력(interference drag)을 최소화하였다.


이후 첫 번째 시제기는 1945년 1월에 완성되었는데 이때 Westinghouse X19B 엔진은 하나밖에 완성되지 않아 1945년 1월 26일, FH Phantom은 단 하나의 엔진만을 장착한 채 무모한 첫 시험비행에 나섰다. 그만큼 McDonnell 설계진들은 Phantom의 설계에 자신감을 가졌다고 하며 다행히 기체는 무사히 첫 비행을 마쳤고 1945년 3월 7일에 ‘FD-1’이라는 이름으로 100대를 발주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버리는 바람에 Phantom은 도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는데 다행히 미 해군은 시험적인 성격으로라도 제트 함재기를 운용해보길 원했고 그 덕에 규모는 60대로 줄었지만, 도입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McDonnell FH Phantom @Wikipedia

덕분에 Phantom은 1946년 7월 21일, 세계 최초로 항모 갑판 위에서 발진하고 착함하는 데 성공한 함재기가 되었고 다음 해 1월부터는 양산 기체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양산형 기체는 J30-WE-20 엔진을 사용해 시제기보다 추력이 200파운드 정도 향상되었고 연료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동체를 연장해 내부 연료 탑재량을 늘렸으며 심지어 동체 아래에도 외부 연료탱크를 증설했다. 이는 그만큼 제트 엔진의 연비가 좋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공군보다 더 제약된 환경에서 제트기를 운용해야 했던 해군에게는 이후에도 다른 함재기를 개발할 때 큰 골칫거리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동체를 확장하고 연료 탑재량을 늘리다 보니 제트 항공기의 가장 큰 단점인 최고 속도가 왕복 엔진 항공기보다 조금 빠른 정도로 낮아졌다. 게다가 기체의 많은 공간이 연료를 탑재하는데 할애되다 보니 Phantom의 무장은 기술적으로 더는 손볼 데가 없었던 왕복 엔진 항공기보다 빈약해졌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봤을 때 Phantom은 성능만 보면 실패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1947년 7월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Phantom은 정규 항모가 아닌 경항모에 배치되었고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1949년부터 순차적으로 퇴역을 길을 걷다가 1954년에 완전히 퇴역하고 만다.


FH Phantom @Tailhook Topics

정규 항모가 아닌 경항모에 배치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 해군은 제트 함재기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제트 함재기의 성능 역시 미 해군의 우려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 해군은 FH Phantom을 도입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제트 함재기의 장단점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었고 제트 함재기의 잠재력을 깨닫고는 새로운 제트 함재기 개발 및 도입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게다가 Phantom이라는 이름은 이후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세기의 걸작 전투기 F-4 Phantom II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한편, FH Phantom이 한창 도입의 절차를 걷고 있을 때 P-51 Mustang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North American에서도 제트 함재기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제트 함재기 개발에 착수한다.


North American FJ-1 Fury 1946년 9월 11일


North American은 P-51의 성공을 이어가고자 P-51의 설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함재기를 개발했다. 이러한 설계는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위험 요소는 최소화하고 신뢰도가 높은 설계안을 만들 수 있어 당시 많은 초기 제트 항공기들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우선, 음속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독일로부터 기초적인 후퇴익 자료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으며 이미 사용 중이던 P-51의 층류익도 꽤나 최근에 개발된 우수한 익형이다보니 FJ-1은 P-51의 직선의 테이퍼형 주익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주익은 일반적인 함재기와 달리 얇은 층류익에 다이브 브레이크가 설치되다보니 구조적으로 강도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 접히지 않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대신 한정된 갑판 내에서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Kneeling’ 노즈 기어를 도입하였다.

F2H Banshee Kneeling @airsoc.com
North American FJ-1 Fury @Business Insider
Kneeling @U.S. Navy Aircraft History

이후 1946년 9월 11일,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고 미 해군은 100대의 FJ-1을 도입하기로 결정했으나 다양한 테스트를 거치면서 도입 대수가 30대로 대폭 감소하고 말았다. 이는 FJ-1의 성능이 특출나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FJ-1이 한창 개발과 도입 절차를 밟고 있을 때 제트 엔진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더 좋은 함재기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던 것이 원인이라 본다. 그러다보니 1947년 10월부터 미 해군에 배치된 FJ-1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49년 5월부터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했고 1953년에는 미 해군 예비역에서도 물러나 완전히 퇴역하고 말았다.


게다가 Phantom과 달리 최초라는 기록도 없어 별다른 특징 없이 퇴역한 함재기이다. 하지만, 함재기를 넘어 항공 역사 전체에서 본다면 FJ-1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비록 P-51 Mustang과 F-86 Sabre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기체가 바로 FJ-1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FJ-1의 설계가 완성될 무렵 미국은 독일이 연구해 온 기초적인 후퇴익 자료를 바탕으로 1세대 전투기를 대표하는 F-86을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연재할 F-86에서 다루도록 하자. 그러나 지금까지 소개한 North American과 McDonnell은 함재기를 개발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기업들이고 미 해군에게 만족스러운 함재기를 여럿 제공해준 함재기 명문가는 따로 있다.

North American FJ-1 Fury @Business Insider

Vought F6U Pirate


1944년 9월 5일, 미 해군은 Westinghouse J34 엔진을 탑재하는 단발 제트 전투기 개발할 기업을 모집했고 그중에는 F4U Corsair를 제작한 함재기 명문가 Vought도 있었다. 당연히 1944년 12월 29일, 미 해군은 Vought에게 1대의 XF6U-1 제작을 승인했고 전시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해 Vought는 곧바로 개발에 들어갔다. 덕분에 첫 시제기는 1946년 10월 2일에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고 내년 2월 5일, 미 해군은 30대의 양산형 F6U을 Vought에게 주문한다.

Vought F4U Corsair @Wikipedia

양산형 F6U는 시제기와 달리 사출좌석이 구비되었고 수평 미익에 스태빌라이저를 덧붙이는 개량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함재기들이 날개를 접을 수 있는 것과 달리 F6U를 비롯한 초기 제트 함재기들은 새롭게 도입한 얇은 층류익이 고속의 기류와 높은 G를 견디지 못할 것을 우려해 날개를 접을 수 없었다. 이는 F6U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였는지 F6U의 날개는 동체에 비해 짤아 기체 자체가 전반적으로 시가처럼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원통형 동체에는 긴 항속거리로 유명한 제로센의 3배에 달하는 연료(2,460리터)를 탑재할 수 있었지만 실제 항속거리는 제로센의 절반에 불과해 초기 제트 전투기들과 마찬가지로 연비가 몹시 나쁜 편이었다. 게다가 F6U는 미국이 개발한 전투기 중에서는 최초로 후기 연소 기능(애프터버너 : after burner)을 탑재한 기체였다. 물론 후기 연소를 위해서는 엔진을 30초 정도 예열해야 했으며 가뜩이나 엔진의 연비가 나빴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Vought F6U Pirate @Airplanes in the skies
Vought F6U Pirate @Airplanes in the skies
F6U Kneeling @U.S. Navy Aircraft History

그러나 양산형 F6U는 첫 비행이 실시된 지 3년 정도가 지난 1949년 6월 29일이 되어서야 첫 비행에 나설 수 있었다. 여기에는 미 해군이 큰 영향을 주었다. F6U의 양산이 진행될 무렵 미 해군은 Connecticut에 위치한 Chance Vought의 공장을 전쟁이 끝나면서 공터로 남은 Texas로 이전시킨다. 그래서 기체는 코네티컷에서 제작되다가 최종 조립은 텍사스로 옮겨 조립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텍사스에서는 F6U가 시험 비행하기에 충분한 긴 활주로가 없다 보니 완성된 기체는 다시 분해되어 오클라호마(Oklahoma)로 보내져야만 했다.


그러나 F6U가 우여곡절 끝에 양산을 거쳐 도입되려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함재기 명문가 Grumman에서 F9F Panther의 성능 평가가 이뤄지고 있었고, F9F는 F6U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이러다 보니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에 비해 뛰어난 점이 별로 없었던 F6U Pirate은 실전 부대가 아닌 실험 및 평가 부대라 할 수 있는 미 해군 시험 비행센터에 고작 33대가 도입된 이후 양산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해군 승조원들은 F6U를 해적(pirate)이 아닌 땅돼지(Groundhog)라고 불리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1950년 10월 30일, 미 해군은 공식적으로 F6U를 퇴역하기로 결정했고 F6U는 미 해군 역사상 가장 짧게 운용된 함재기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Vought사는 이후에도 다시 매우 독특한 함재기를 선보이며 미 해군의 불만을 사고 만다.




참고자료 및 출처

Cover image by Forums war thunder

Wikipedia, McDonnell Phantom

Wikipedia, North American FJ-1 Fury

Wikipedia, Vought F6U Pirate

Wikipedia, Westinghouse J30

Wikipedia, Westinghouse J30 (GR)

Wikipedia, Westinghouse J32

Wikipedia, Westinghouse J34

쿵디담, 최초의 함상 제트전투기 - 맥도널 FH 팬텀(McDonell Phantom)

쿵디담, 머스탱의 후신이자 세이버의 원조 : 노스 아메리칸 FJ-1 퓨리(North American FJ-1 Fury)

쿵디담, 미 해군의 초기 함상 제트전투기 Vought F6U Pi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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