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소련의 첫 제트 전투기
MiG 설계국과 Yakovlev 설계국
1940년대 중반 제트 엔진 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소련은 VRDK라는 독특한 동력원을 고안했지만 제트 엔진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VRDK 엔진의 연비는 끔찍할 정도로 나빴으며 구조가 복잡해 양산하기에 부적합해 제트 엔진의 필요성만 부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1940년대 중반부터 소련은 전후 독일이 남긴 Jumo 004과 BMW 003을 기반으로 Jumo 004는 Klimov RD-10으로, BMW 003은 Klimov RD-20으로 역설계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한다.
1946년 4월 24일 Mikoyan-Gurevich MiG-9 Fargo
소련의 첫 제트 전투기는 MiG(Mikoyan-Gurevich) 설계국에서 선보였다. 1945년 1월 소련은 MiG 설계국에 독일에서 노획해 온 BMW 003 엔진을 2개 탑재한 제트 전투기 제작을 (요구했고 3대의 시제기가 1946년 3월 15일까지 첫 비행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MiG 설계국은 1945년 말, 시제기 설계에 들어갔고 예정보다 조금 늦은 1946년 4월 24일에 MiG-9이 주기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주기장에는 MiG-9와 함께 Yakovlev의 첫 제트 전투기 Yak-15도 함께 주기되어 있었는데 이때 누가 먼저 하늘로 날아올라 소련 최초의 제트 전투기가 될지를 두고 동전 던지기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우리가 MiG-9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MiG 설계국의 승리였고 그렇게 소련 최초의 제트 전투기는 MiG-9가 되었다.
MiG-9 @Wikipedia이렇게 개발된 MiG-9는 당시 초기 제트 전투기들이 흔히 사용한 직선의 테이퍼익이 사용되었으며 주목할 만한 특징은 기수 한가운데에 있는 37mm 기총이다. 이는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 P-51 Mustang이 12.7mm 기총을 장착한 것과 영국의 Spitfire가 7.7mm 기총을 장착한 것과 대조되는데 이러한 37mm 기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소련의 항공기 설계 철학을 잘 보여준다.
첫 번째, MiG-9의 주임무는 폭격기 요격이었다. 1945년 중반에 전쟁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은 곧바로 냉전 체제에 들어갔는데 당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폭격기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핵폭탄의 위력을 눈앞에서 지켜본 소련 입장에서 소련 본토에 미군 폭격기가 진입하는 일은 악몽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지대공 미사일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건 전투기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련에는 공군과 별개로 방공군이 따로 존재했고 이후 설계되는 많은 전투기들 역시 공중전보다는 요격 임무에 초점을 둔 채 개발되었다. 결국, MiG-9는 육중한 폭격기에 걸맞은 37mm(3.7cm) 대구경 기총이 장착된 것이다.
Bell P-39, 가운데에 총이 있음을 볼 수 있다 @MilitaryHistoryNow.com두 번째, MiG-9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은 P-39의 영향을 받았다. 실은 소련에서 제작한 기체만 37mm 기총을 탑재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Bell에서 개발한 P-39 역시 전방 프로펠러 한가운데에 37mm 기총을 장착했는데 이 37mm 기총은 소련군이 동부전선에서 독일 지상군을 공격할 때 매우 요긴했다. 그러다 보니 P-39는 소련의 주력 전투기가 되었고 자연스레 기체 한가운데에 기총을 탑재하는 설계는 고스란히 MiG-9의 설계에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공기 흡입구 한가운데에 위치한 37mm 기총은 심각한 결함을 야기했다. 기총이 공기 흡입구 한가운데에 있다 보니 고고도에서 사격할 때 발생하는 화염이 엔진으로 들어가 엔진을 정지시켜버리는 사고(flame out)가 빈번히 일어났다. 물론, 이러한 결함은 설계 초기에서부터 제기되었지만 소련 당국은 양산에 들어가면 충분히 해결될 것이라 판단하고 설계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함은 나중에 가서도 해결되지 못했고 1947년 3월부터 양산에 들어간 MiG-9는 일부 수정 사항을 변경하느라 양산이 미뤄졌는데 그 사이 MiG-15가 등장하면서 600 대가량이 제작된 채 양산이 중단되었다.
37mm @The Dreamy Dodo-WordPress.com* 참고로 MiG 설계국은 제식화 된 전투기에는 홀수 번호를 사용합니다. 짝수는 실험 기체라 정보도 적고 여러 가지로 복잡합니다.
* 그렇다면 MiG-9와 MiG-15 사이의 MiG-11과 MiG-13은 어디로 갔느냐? 이는 소련 항공기 자료 조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인데요. MiG-3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I-220이 MiG-11이라는 제식 번호는 받았는데 실패로 끝나 사라진 것 같고요. MiG-13은 지난 글에서 살펴본 혼합 동력 항공기 I-250입니다. 제식 명칭은 붙었지만 실패로 끝나서 MiG-13이라는 이름만 가진채 실험 기체로 전락한 것 같네요.
1946년 4월 24일 Yakovlev Yak-15
미그 설계국이 독일제 BMW 003 엔진을 탑재한 제트 전투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비슷한 시기 야코블레브(Yakovlev) 설계국은 Junkers Jumo 004 엔진을 사용해 제트 전투기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Yakovlev는 시간을 단축하고 개발 과정에서의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인 Yak-3을 기반으로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Yak-15는 Yak-3에 큰 변형을 가하지 않은 채 완성되었는데 변경된 점이라면 제트 엔진의 배기열로부터 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동체 아래에 열차폐 금속판을 덧붙인 정도였다. 덕분에 Yak-15는 개발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처녀비행을 실시할 수 있었다.
Yakovlev Yak-3 @Asisbiz
Yakovlev Yak-15 @Pinterest이러한 설계는 제트 엔진과 천음속 구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940년대에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Yakovlev 말고도 많은 항공기 제작사들이 기존 왕복 엔진 항공기를 기반으로 제트 전투기를 개발했고 대표적인 예가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FJ-1이다. 이밖에도 나중에 다루겠지만 영국과 스웨덴에서도 왕복 엔진 항공기를 기반으로 제트 전투기가 개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제트 전투기들은 대게 실망스러운 성능을 보여주었는데 Yakovlev Yak-15만큼은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Yak-15는 괜찮은 비행 성능과 함께 왕복 엔진 항공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왕복 엔진 항공기에서 제트 전투기로 전환하기에 적합했고 조종하기도 쉬워 전환 훈련기로 운용되었다. 하지만, Yak-15가 그대로 사용한 Yak-3의 두꺼운 날개는 고속 비행에 적합하지 않았고, 후륜식 착륙 장치를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엔진 배기열이 활주로를 손상시키는 등의 문제점도 존재했다.
Yakovlev Yak-17 @Pinterest
Yakovlev Yak-17 with wingtip fuel tank @pinterest그래도 Yak-15는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후 RD-10을 장착한 Yak-17이라는 후속기도 개발될 수 있었다. 그리고 Yak-17은 전작 Yak-15의 문제점들을 많이 보완했다. 우선 후륜식 대신 전륜식 착륙 장치를 적용했고 동체 내부에 착륙 장치를 수납할 공간을 만들면서 부족해진 내부 연료 탑재량은 양 날개 끝에 보조연료 탱크를 증설함으로써 해결하였다. 당연히 비행 성능은 Yak-15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수했다. 하지만, Yak-17은 1948년부터 MiG-15의 등장으로 빠르게 일선에서 물러났다.
참고자료 및 출처
cover image by large scale modeller
Wikipedia, Mikoyan-Gurevich MiG-9
Wikipedia, Yakovlev Yak-15
Wikipedia, Yakovlev Yak-17
Wikipedia, Junkers Jumo 004
Wikipedia, BMW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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