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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Aug 18. 2020

1939년, 로켓 엔진의 등장

손쉽게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위험한 방법

해당 글은 일부 보완 및 수정을 거쳐 1940년대 항공역사 매거진 글로 대체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1939년 Heinkel이 선보인 He178은 성능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제트 엔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후 독일에서는 제트 엔진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시 제트 엔진은 아직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이론적으로는 왕복엔진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만 실제로 구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작에 성공해도 신뢰도가 낮았고 효율도 좋지 못했다.


한편 1920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비 제한을 받고 있던 독일은 로켓이 규제에 걸리지 않는 점을 이용해 로켓을 이용한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독일은 최초로 액체 추진 로켓을 제작한 미국의 존 고다드 박사(Rober H. Goddard)를 찾아가 로켓 기술에 대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이어서 1932년에는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을 중심으로 독일 육군 로켓 연구소를 발족시키고 후에 최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되는 A-시리즈 로켓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로켓 엔진을 항공기에 적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기 시작했다.


Heinkel He176


Heinkel He176 @Luft'46

Heinkel은 제트 엔진뿐만 아니라 로켓 엔진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30년대 후반 폰 브라운이 로켓 엔진을 항공기에 접목시키려고 할 때, 자기 회사의 항공기를 제공해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헬무트 발터(Hellmuth Walter)는 과산화수소(T-stoff)와 촉매(Z-stoff)를 반응시켜 추력을 만드는 발터 엔진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가 개발한 엔진은 단순한 화학반응을 통해 생성된 산소와 수증기로 추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알코올과 액체 산소를 연소시켜 추력을 얻는 폰 브라운의 엔진과 달랐다. 덕분에 발터 엔진은 폰 브라운의 엔진에 비해 반응성이 좋아 최대 추력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았다.


때문에 He176은 발터의 과산화수소-촉매 기반 로켓 엔진을 탑재하고 1939년 6월 20일 처녀비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He176은 제트 엔진과 비슷한 이유로 독일 공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최초로 액체 로켓 엔진만을 가지고 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이후 항공기용 로켓 엔진은 Me163에서 빛을 발한다.


Messerschmitt Me163 Komet


1919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종전 직후 독일은 엔진이 달린 항공기 개발이 철저히 제한되었다. 따라서 동력 없이 상승기류를 이용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글라이더가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러나 1929년에 대공황이 일어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히틀러가 1933년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1935년에는 급기야 재군비 선언을 한다.


DFS194, beginning of me163 @nevington war museum


그렇게 항공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글라이더에 로켓 엔진을 장착해보자는 제안이 나오게 되었다. 글라이더에 로켓 엔진을 장착해보니 뛰어난 상승력을 보여주었고 연료를 다 사용하고 나면 기다란 날개 덕분에 활공이 가능했다. 성공적인 비행 시험 후 로켓 엔진 요격기 사업은 Messerschmitt로 넘어가 Me163을 만들어냈다.


Me163A V4, the first prototype @me163.de


그렇게 Me163은 1941년 9월 1일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10월 2일에는 1,004km/h라는 경이로운 속도를 보여주었다. 참고로, 그전까지는 유인 항공기 중에서 1,000km/h의 벽을 넘은 항공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독일 공군은 본토 방공용 요격기로 Me163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연합군의 폭격이 거세지는 전쟁 말기에는 절박함으로 바뀌어 Me163의 무리한 운용으로 이어졌다.


Me163 Komet @Wallpaper abyss


당시 Me163는 왕복엔진 항공기로는 상상도 못 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또한, 꼬리 날개가 없는 무미익 항공기라는 점에서 항공역학적으로도 주목할만하다. 그럼에도 Me163은 무리하게 개발 및 배치된 항공기로 평가받는다. 바로 로켓 엔진 때문이다. 


우선 Me163에 탑재된 HWK 109-500 발터 엔진에는 인체에 닿으면 피부를 괴사시킬 정도로 독한 연료가 사용되었다. 천에 닿기만 해도 불이 붙을 정도였고 반응성이 높아 폭발 사고도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교육이나 훈련 도중에 사고도 자주 일어났고 심한 경우 조종사나 정비사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제트 엔진은 연료만 채우고 산소는 외부에서 공급받지만 로켓 엔진은 특히, Me163은 작은 동체 안에 연료와 산화제를 모두 담아야 했다. 그래서 Me163의 체공시간은 8분에서 12분 정도로 매우 짧았다. 8분 안에 이륙해서 고도를 올린 뒤 폭격기를 요격하고 기지로 귀환해야만 했다. 여기에 Me163는 속도가 너무 빨라 조종뿐만 아니라 폭격기를 제대로 조준하는 것도 어려웠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더라도 Me163 조종사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연료를 다 사용한 Me163은 자체 동력 없어서 활공해야 했는데, 이때는 적에게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은 기체 안에 연료를 최대한으로 집어넣고 여기에 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해 중화기까지 장착하느라 제대로 된 착륙 장치를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퀴 형태의 착륙 장치가 아니라 썰매 모양의 스키드(Skid) 랜딩기어가 설치되었다. 


문제는 가뜩이나 빠른 속도를 가진 Me163을 썰매판 하나로 동체 착륙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위험했다. 여기에 남아있던 연료가 조금이라도 유출되면 조종사가 죽거나 비행기가 폭발할 수도 있었다.


Me163 Komet Skid gear @Aces flying high


이밖에도 활공해서 착륙하기 때문에 정확히 기지로 귀환하는 것이 어려웠고 벌판에 착륙한 바퀴 없는 Me163을 다시 기지로 회수하는 작업은 굉장히 번거로웠다. 마지막으로 전쟁 말기에는 로켓 연료마저 부족해지면서 작전 수행 자체가 어려워졌다. 결국 1944년 7월부터 작전에 투입된 Me163 비행대대는 Me 262가 폭격기 요격에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하에 1945년 5월 폭격기 요격 임무에서 해체되었다. 이후 Me163을 몰던 조종사들은 모두 Me262 조종사가 된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퇴역하지만, 독일과 비슷하게 미국의 B-29 고고도 폭격기로 본토가 공격받고 있던 나라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일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본편을 따로 만들어 간단하게 다루도록 하자.


Mitsubishi J8M Shusui (Navy)/ Ki-200(Army) @destination


Bachem Ba 349 Natter


날로 심해지는 연합군의 폭격에 독일군은 1943년부터 "Jägernotprogramm(긴급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요격기를 구상한다. 물론, 독일도 처음부터 로켓 요격기를 개발할 생각은 없었다. Me163에서 살펴보았듯이 로켓 전투기는 운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과 비슷하게 지대공 미사일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미사일이 폭격기를 추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어려웠다. 


결국, 위험하고 복잡하지만 사람이 탑승하는 로켓 요격기를 개발하기로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Bachem Ba 349 Natter는 독일의 절박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Launching the Bachem on the rail @hechingen4y / Bachem Ba 349 Natter @Wikipedia


Ba 349 Natter가 등장할 당시 독일은 이미 많은 조종사들을 잃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Ba 349에는 미숙한 조종사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비행기를 조종 수 있도록 V-2 로켓에 사용되는 자동조종장치가 장착되었다. 덕분에 조종사는 별다른 조종 없이도 폭격기 근처 상공으로 올라갈 수 있었고 조종은 그 이후부터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숙련되지 않은 작업자들도 최소한의 작업 도구를 가지고 제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목재가 항공기에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요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이 독특했다. 이륙은 Me 163과 비슷하게 로켓을 이용해 이륙한다. 다만, Me 163은 동체 바닥에 바퀴를 달아 지표면과 평행하게 이륙한다면 Ba 349는 레일을 타고 지표면에서 수직으로 날아오른다. 이륙한 뒤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은 Me 163과 동일하다. 


하지만, 임무 수행 후 복귀하는 과정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기존 Me 163이 활강해서 착륙했다면 Ba 349는 항공기가 공중에서 분리되어 낙하산으로 회수된다. 우선, 공중에서 조종석을 기준으로 동체가 둘로 나눠진다. 이때 조종사는 낙하산을 사용해 조종석에서 나와 지상에 착지하고 로켓 엔진이 들어있는 후면부에서도 낙하산이 펼쳐저 안전하게 회수된다.


Ba 349 Bail out @History HD_쿵디담


하지만, Ba 349는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1945년 3월 1일 처녀비행에 성공하지만 이미 전세는 연합군에게 기운 뒤였기 때문이다. 도입이나 운용 자체도 어려웠겠지만 설령 도입이 되어 성공적으로 폭격기들을 요격할 수 있었더라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독일은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동년 6월 22일에 시작된 러시아의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있었다. 


그러니까 Ba 349가 처녀비행을 실시한 시점에서 독일은 항복만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1945년 5월 7일 독일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남아 있던 Ba 349 Natter들은 연합군에게 넘어갔다.


전쟁이 끝나고 제트 엔진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로켓 엔진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로켓 엔진은 제트 엔진보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동력원이었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자 소련의 폭격기 위협에 대항해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로켓 엔진 요격기가 다시 등장한다. 


미국에서도 고체 로켓을 이용해 항공기 이륙거리를 단축시키는 ZELL(ZEro Length Launch) 방식이나 초음속 영역에 대한 연구에서 로켓 엔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제트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저렴한 비용으로 짧은 시간에 최대 출력에 도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기 제트 엔진의 단점들이 하나 둘 해결되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적인 항공기에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 것은 보기 어려워졌다.


한편, 제트 엔진은 크게 두 종류로 영국과 독일에서 연구되고 있었다.




참고문헌 및 출처


배경 사진 : HistoryNet

Wikipedia, V-2 Rocket

Wikipedia, Hellmuth Walter

Wikipedia, Heinkel He176

Wikipedia, Messerschmitt Me163 Komet

Wikipedia, Deutsche Forschungsanstalt für Segelflug

Wikipedia, Rhön-Rossitten Gesellschaft

Wikipedia, Bachem Ba 349 Natter

History HD, Bachem Ba 349 Natter (video)

동고동락, 장거리 로켓의 아버지, V-2 로켓

쿵디담의 다람쥐우리, 실전최강 전투기대전(19) 최후의 비밀병기

쿵디담의 다람쥐우리, 엔진의 발전이 전투기에 끼친 영향(7)

쿵디담의 다림쥐우리, Bachem Ba 349 Natter

네이버캐스트, 무기의 세계 Me163 코메트 로켓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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