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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Feb 04. 2023

DC-10 Story (2)

DC-10은 정말 문제가 많은 여객기였을까

1974년 3월 3일 터키항공 981편

1974년 3월 3일,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이륙한 터키 항공 981편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륙하여 영국 런던으로 향하던 중 중간 기착지로 프랑스 파리 오를리 국제공항에 잠깐 들렸다. 그리고 이곳에서 재급유를 받고, 일부 화물을 싣고 내렸다. 이후 비행기는 예정대로 오를리 공항에서 이륙하여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나 2년 전 아메리칸 항공 96편처럼 이륙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화물칸 도어가 공중에서 열리면서 기체는 조종불능 상태에 빠지고 77초만에 프랑스의 한 숲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한 346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는 당시로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 항공사고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 4위이자 하나의 기체를 통해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낸 불명예스러운 사고[1]이다.


당시 터키 항공의 DC-10에는 파리에서 일부 승객들이 내리면서 117명만 탑승한 채 이륙할 예정이었으나 하필 영국유럽항공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해당 항공편을 이용할 수 없어진 승객들이 추가로 탑승하면서 무려 만석에 가까운 216명이 탑승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5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던 아메리칸 항공 96편보다 객실 바닥에 걸리는 하중이 컸고, 그 결과 화물칸이 열리면서 기압 차가 발생할 때 객실칸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데 필수적인 모든 유압이 기능을 상실한 것이었다.


Academic Dictionaries and Encyclopedia, Turkish Airlines Flight 981

해당 사고 이후 미 연방항공국(FAA)는 DC-10에 대하여 비행금지명령을 내렸으며 언론은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라는 점에 주목하여 DC-10에 'Dead Cruiser 10'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연일 보도했다. 여기에 맥도넬 더글러스가 화물칸의 설계 결함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폭로되면서 맥도넬 더글러스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었다. 물론 맥도넬 더글러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화물칸의 닫힘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터키항공이나 감항성 개선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FAA 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자 했으나 의미는 없었다. 여론과 비난은 이미 맥도넬 더글러스를 향해 있었고 회사는 희생자들에게 1,800만 달러를 배상해야만 했다. 그리고 맥도넬 더글러스는 그제서야 화물칸 도어에 대해 대대적인 재설계를 실시하고, 화물칸과 객실 사이 환기구를 설치하여 행여라도 화물칸 도어가 열려 기압차가 발생하더라도 바닥이 내려앉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터키항공 981편 사고 이후 화물칸 도어 열림 사고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사고가 벌어진 뒤에도 승객들과 항공사들은 DC-10에 계속 탑승했다.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처음 선보여진 '광동체 항공기'라는 새로운 여객기에 대해 어떤 회사도 완벽할 수 없으며, 완벽한 항공기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관대한 마음으로 DC-10에 탑승했으며, 항공사 입장에서도 DC-10만큼 저렴한 가격에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마땅한 기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2] 하지만, DC-10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9년 5월 25일 아메리칸 항공 191편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아메리칸 항공 191편 DC-10이 271명의 탑승객을 태우고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러스로 향하기 위해 이륙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공항 활주로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공중에서 왼쪽 1번 엔진이 떨어져 나가면서 기체가 균형을 잃고 추락하고 만 것이다. [3] 엔진이 떨어져 나간 왼쪽 날개는 양력을 상실했으나, 오른쪽 날개에서는 양력이 계속 발생하면서 안그래도 균형을 잃은 기체는 급격하게 회전하면 지상에 그대로 꽂혔다. 그 결과 DC-10에 탑승하고 있던 271명 전원 그리고 지상에 있던 2명까지 총 273명이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해당 사고는 2022년 현재까지 911 테러를 제외하면 미국에서 발생한 항공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로 남아 있다.


사고 직후 FAA는 모든 DC-10 기체에 대하여 엔진과 날개를 이어주는 파일런에 대해 검사를 실시했고 검사 결과 상당수의 기체에 균열이 있음을 확인하자 이번에도 맥도넬 더글러스의 설계 결함이라 추정하여 1979년 6월 6일, 미국 내 모든 DC-10의 이륙을 중단시켰다. 이후 다른 국가들도 자신들의 DC-10의 이륙을 제한하기까지 이르러 대략 1개월간 전 세계의 모든 DC-10은 지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사이 이번에는 사고의 원인이 맥도넬 더글러스가 아닌 아메리칸 항공이 사고 8주전에 실시한 불량 점검이 원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원래대로라면 전용 치공구를 사용하여 매뉴얼에 따라 엔진 주변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분해한 다음 엔진을 장탈해야 했으나 이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지게차로 한 번에 엔진을 떼어내 정비를 해온 것이다. 당연히 이는 엔진과 날개를 연결해주는 파일런에 피로를 주었고, 그 결과 아메리칸 항공 191편의 왼쪽 1번 엔진은 공중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Chicago Magazine

사고의 원인은 맥도넬 더글러스가 아니였지만, 언론들은 이미 맥도넬 더글러스라는 이름과 함께 DC-10의 사고를 열심히 보도하는 중이었으므로 맥도넬 더글러스의 이미지는 이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다. 게다가 1980년대 초 미국은 1970년대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베트남전 등)로부터 경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여객기도 잘 팔리지 않게 되면서 맥도넬 더글러스는 1988년까지 총 446대(미 공군으로부터 수주 받은 60대의 KC-10 공중 급유기 포함)의 DC-10을 생산한 채 양산을 중단해야 했다. 그리고 DC-10은 맥도넬 항공이 더글러스를 인수하면서 개발한 마지막 DC(Douglas Cruiser) 시리즈가 된다. 이후 맥도넬 더글러스는 오명을 벗고자 회사의 앞글자를 차용하여 MD(McDonnell Douglas) 시리즈를 출시하나 시장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야심차게 출시한 DC-10을 통해 예상했던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했을 뿐더러 기업 이미지도 추락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던 맥도넬 더글러스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여객기 설계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과거 DC-10의 설계를 소폭 수정하여 1990년, DC-10와 매우 흡사한 삼발 여객기 MD-11을 출시하였다. (별다른 설명이 있지 않는 이상 둘을 구분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둘은 닮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엔진의 성능과 신뢰도가 향상된 덕에 ETOPS 규정이 완화되었고 이로서 엔진이 2개만 있는 여객기도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가로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기준에 맞춰 보잉은 B777을, 에어버스는 A330를 출시하는 등 바뀐 규정에 맞춰 새로운 쌍발 여객기를 출시하고 있었다. 즉, 맥도넬 더글러스가 내놓은 MD-11은 시대착오적인 기체였으며 기체 자체의 성능도 좋지 못한 바람에 맥도넬 더글러스는 얼마 못가 보잉에 합병되고 말았다. [4]


여기까지 읽었다면 공중 급유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왜 한 여객기의 개발 과정부터 그 여객기를 개발한 회사의 최후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답은 간단하다. 수많은 사고를 기록하며 위험한 여객기라는 별명이 붙은 기체를 미 공군은 어떻게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큰 문제 없이 운용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잘 생각해보면 왜 문제 없이 운용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첫 번째, DC-10을 위험한 여객기로 만들었던 화물칸 도어가 화물칸에 연료를 탑재하는 KC-10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있더라도 터키항공 981편 이후 해당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두 번째, 터키항공 981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의외로 B747이 DC-10에 버금갈 정도로 사고율이 높은 항공기라는 점이다. 실제로 모든 DC-10의 사고가 전부 기체 설계 결함에 기인한 것은 아니였다. 단지 유명한 두 사고가 정말 불행히도 미국 역사상 최악 또는 항공 사고 역사상 4위 등 너무나 큰 규모였을 뿐이다.




[1] 1977년 03월 27일 보잉 747-121과 보잉 747-205B가 충돌하는 테네리페 공항 참사가 583명의 사상자를 가져 1위이며, 1985년 08월 12일 일본항공 123편의 보잉 747SR-100 추락사고가 520명의 사망자를 기록하여 전체 2위이자 단일기체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3위는 1996년 11월 12일 보잉 747-168B 여객기와 일류신 il-76 수송기가 뉴델리 상공에서 충돌한 뉴델리 상공 공중 충돌 사건으로서 두 기체에 타고 있던 349명 전원이 사망했다.

[2] From 'AeroXplorer, DC-10: Dangerous or Misunderstood? by Luke Zinn.

[3] 기체는 이륙결심속도인 V-1을 넘긴 상태였으므로 반드시 이륙해야만, 이륙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4] 군용 부문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의 수많은 신예기 개발 사업은 통폐합되었으며 더 이상 고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맥도넬 더글러스가 그루먼과 함께 야심차게 개발 중이었던 A-12 Avenger II도 있었다. 성능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소련이 붕괴하자 막대한 개발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채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다.

[5] 미 공군은 1987년 9월 17일, 한 대의 KC-10A 기체가 지상에서 점검을 받는 도중 폭발하는 사고로 한 대를 잃었을 뿐 나머지 59대는 문제 없이 잘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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