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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15. 2024

7번 국도, 77번 국도

   작년 12월부터 아버지 고향인 전남 해남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는 서글서글하면서 성실해 보였다. 충실한 공복公僕의 상이란 그 젊은이 얼굴을 두고 지칭한다고 착각할 만큼. 아버지와 더불어 점방 매출에 일조하던 젊은이는 머잖아 해남 지역경제 부흥을 위해 이발비를 보탤 테니 그게 슬쩍 아쉬운 깎새였다. 

   해남에서 부산까지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더니 운전이 미숙해 고속도로를 탔는데도 엉금엉금 기다시피 밤길 5시간이었다나. 이왕이면 남해안과 나란히 달리는 국도에 실었으면 운치 즐기고 좋았지 않냐는 타박 아닌 타박에 눈이 빠지게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이 한눈 팔 새가 어디 있었겠냐며 남의 속도 모른다는 서운한 표정이었다. 

   바다 끼고 내달리는 국도를 말밑천 삼아 깎새는 동해안 바다를 끼고 한반도 등허리를 종으로 잇는 7번 국도에 얽힌 추억을 나부댔다. 장교로 군생활을 한 깎새가 가장 오래 받은 휴가는 3박4일이었다. 장교 휴가는 짧아야 한다고 육군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군생활 내내 휴가가 박했다. 1990년대 중반이었으니 요즘보다 도로 사정이 좋았을 리 만무해서 자대가 있던 강원도 원통에서 고향인 부산까지 내려가려면 귀하디 귀한 휴가를 길바닥에다 적선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되었다. 하여 비용이 꽤 들더라도 깎새는 다른 수를 냈다. 강원도 원통 민통선 가까이 택시를 대절해 그길로 양양공항으로 달린다. 당시 하루에 두 편뿐이었던 양양-부산 노선을 타 이른 오후에 부산 김해공항에 떨어지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부모님께 문안인사만 잠깐 드리고선 복귀 전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밤낮없이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놀았다. 전방 철책근무로 생명수당까지 붙은 소대장 봉급은 두둑했을 테고 그걸 3박4일 내내 부산 유흥가를 전전하며 탕진했으니 그때부터 파락호 기질이 농후했음이라. 팔짱 끼고 애교 떨어줄 애인 하나 없는 처지다 보니 적적한 기분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댈 뿐.

   아무튼 그렇게 짧은 휴가가 후딱 지나가 부대 복귀하는 날이 오면 부산 내려올 때랑은 정반대로 뭉그적댔다. 하던 대로라면 김해공항 가서 양양행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공항 대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당시 부산 명륜동 시외버스터미널에는 빨리 가면 7시간 걸리는 양양행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에 몸을 실어 우선 두어 시간 숙면을 취해 숙취로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를 달랜다. 그러다 눈을 떠 차창 밖을 내다보면 동해안이 끝없이 펼쳐졌다. 남해안이나 서해안처럼 아기자기한 맛이라곤 없는 단조롭고 건조한 바다 풍경이 술기운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그 자리를 꿰찬 울적함으로 망연자실해하는 사내를 어루만졌다. 그 찰나의 안도감. 깎새는 그렇게 7번 국도를 그렇게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깎새에게 통영은 이상향이다. 통영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77번 국도를, 동쪽으로는 7번 국도를 내달리고 그 국도를 끼고 산재해 있는 섬들을 유유히 나다니는 로망이 말년에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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