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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01. 2024

마음의 준비

   부친은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섣불리 단언하셨다. 장례식장은 어디로 구하고 장례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따위 장례와 관련해 제반사항을 준비하라는 거였다. 멀쩡한 사람 두고 송장 치우는 꼴이라서 대들었다. 부친은 서운해했다. 엄마 상태를 보니 얼마 못 갈 게 분명한데 닥쳐서 허둥대는 것보다 나을 성싶어 일러두는 건데 화낼 일이냐면서.

   서울 사는 동생한테 엄마 상태를 알려 주는데 대뜸 장지는 어디로 할 거냐고 녀석이 물었다. 장례식장, 장례물품 따위야 자기 회사와 연결된 상조를 통하면 되니 급한 게 아니다, 정작 시급한 건 장례방법, 장지 알아보는 게 아니냐는 설명이었다. 부친과 궁합이 별로 안 맞는 동생이 질리도록 현실적인 부친과 간혹 겹쳐 보이면 당황스럽고 그야말로 질린다. '화장이 대세라는데'하면서 말꼬리가 숨어들어가니까 그럼 유골은 어디다 모실 거냐면서 바다에다 뿌릴 거냐고 대들듯 되물었다.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대답하는 게 그렇게 궁색할 수가 없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게 분명하다. 아니 아직은 준비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약으로 연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 손녀들 이름을 불러주면서 이대로 주욱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가족들에게 결코 바람직스럽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부친과 동생이 옳은지 모른다.

   가끔 상주가 되면 상을 어떻게 치를지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올 만한 문상객도 별로 없지만 일부러 찾아준 이들에게 상주답게 처신할 자신이 없어서 문상객을 안 받겠노라 다짐했었다. 가족끼리 애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고인을 조용히 가슴에 묻는 절차로 장례를 맞이하고 싶었다. 사는 게 버겁고 울적할라치면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 묘소를 습관처럼 찾아가는 아비처럼 손녀들도 끔찍이 위하는 할머니가 그리우면 달려가 마음 달랠 자취 하나쯤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장례는 현실적인 의식이니 낭만이니 감상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대기업 다니는 동생을 찾을 문상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룰 테고 부친이 살아계시니 부친이 그간 뿌린 조의금도 회수해야 마땅할 게다. 장례 치르는 내내 조상弔喪​하는 문상객이 "대고大故의 말씀을 무엇이라 여쭈리까?" 건네면 "오직 망극할 따름입니다" 앵무새 되뇌이듯 대답하는 것이야말로 현실과 어울릴지 모른다. 그게 가족들이 바라는 맏상주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면 하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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