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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04. 2024

시 읽는 일요일(137)

팔순

    이정록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겄네.

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

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

눈감아드릴 테니께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아유.


성장판 수술했다맨서유.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수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나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


   (이정록 시인이 37년 교사생활을 접고 '이야기발명연구소(이발소)'란 공간을 열어 그 소장 격인 '깎사'가 된 지 이태째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발명했는지 궁금하다. 

   시는 시골 버스 기사와 할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대거리로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과 더불어 이정록 득의의 ‘장르’(최재봉 한겨레 기자)로 분류할 만하다.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은 가히 센세이셔널했다. 시를 이렇게도 짓는구나! 그에 비해 <팔순>은 살짝 달리는 성싶어 아쉽다.)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

                                      이정록


​- 이게 마지막 버스지?

- 한 대 더 남었슈.

- 손님도 없는데 뭣하러 증차는 했댜?

- 다들 마지막 버스만 기다리잖유.

- 무슨 말이랴? 효도관광 버슨가?

- 막버스 있잖아유. 영구버스라고.

- 그려, 자네가 먼저 타보고 나한테만 살짝 귀뜸해줘. 아예, 그 버스를 영구적으로 끌든지.

- 아이고. 지가 졌슈.

- 화투판이든 윷판이든 지면 죽었다고 하는 겨. 자네가 먼저 죽어.

- 알았슈. 지가 영구버스도 몰게유. 본래 지가 호랑이띠가 아니라 사자띠유.

- 사자띠도 있남?

- 저승사자 말이유.

- 싱겁긴. 그나저나 두 팔 다 같은 날 태어났는데 왜 자꾸 왼팔만 저리댜?

- 왼팔에 부처를 모신 거쥬.

- 뭔 말이랴?

- 저리다면서유? 이제 절도 한 채 모셨고만유. 다음엔 승복 입고 올게유.

- 예쁘게 하고 와. 자네가 내 마지막 남자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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