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이정록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겄네.
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
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
눈감아드릴 테니께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아유.
성장판 수술했다맨서유.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수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나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
(이정록 시인이 37년 교사생활을 접고 '이야기발명연구소(이발소)'란 공간을 열어 그 소장 격인 '깎사'가 된 지 이태째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발명했는지 궁금하다.
시는 시골 버스 기사와 할머니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대거리로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과 더불어 이정록 득의의 ‘장르’(최재봉 한겨레 기자)로 분류할 만하다.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은 가히 센세이셔널했다. 시를 이렇게도 짓는구나! 그에 비해 <팔순>은 살짝 달리는 성싶어 아쉽다.)
청양행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독한 농담
이정록
- 이게 마지막 버스지?
- 한 대 더 남었슈.
- 손님도 없는데 뭣하러 증차는 했댜?
- 다들 마지막 버스만 기다리잖유.
- 무슨 말이랴? 효도관광 버슨가?
- 막버스 있잖아유. 영구버스라고.
- 그려, 자네가 먼저 타보고 나한테만 살짝 귀뜸해줘. 아예, 그 버스를 영구적으로 끌든지.
- 아이고. 지가 졌슈.
- 화투판이든 윷판이든 지면 죽었다고 하는 겨. 자네가 먼저 죽어.
- 알았슈. 지가 영구버스도 몰게유. 본래 지가 호랑이띠가 아니라 사자띠유.
- 사자띠도 있남?
- 저승사자 말이유.
- 싱겁긴. 그나저나 두 팔 다 같은 날 태어났는데 왜 자꾸 왼팔만 저리댜?
- 왼팔에 부처를 모신 거쥬.
- 뭔 말이랴?
- 저리다면서유? 이제 절도 한 채 모셨고만유. 다음엔 승복 입고 올게유.
- 예쁘게 하고 와. 자네가 내 마지막 남자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