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Feb 18. 2024

시 읽는 일요일(139)

   시가 그토록 대단한가. 그렇다면 시는, 있으면 좋은 것인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소설과 영화와 음악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면 시 역시 그렇다. 그러나 언어는 문학의 매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매체다. 언어가 눈에 띄게 거칠어지거나 진부해지면 삶은 눈에 잘 안 띄게 그와 비슷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계속 시를 쓰고 읽는다. 시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시가 없으면 안 된다고 믿는 바로 그 마음은 없으면 안 된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260쪽)


​   시 평론가 데이비드 오어가 그의 책 『아름답고 무의미한(Beautiful & Pointless)』에서 보고하기를, 어떤 임의의 X에 대해 '나는 X를 좋아한다'와 '나는 X를 사랑한다'의 구글 검색 결과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좋아한다(like)'가 '사랑한다(love)'보다 세 배 더 많다고 한다. 예컨대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가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 X의 자리에 '영화', '미국', '맥주' 등등을 넣어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poetry)'만은 결과가 반대여서 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두 배 더 많다고 한다. 왜일까?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같은 책, 262쪽) 


   (틈틈이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 까닭은 시로써 개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요는 시를 읽지만 시를 잘 읽을 줄 모른다는 거다. 하여 어떻게 해야 시를 잘 읽을지 시를 아는 전문가 글을 곁에다 두고 또 읽는다. 일종의 참고서인 셈이지만 옥상옥​屋上屋이 따로없다. 그럼에도 늘 제자리다. 

   만약 시 한 편을 온전히 읽고 해석하며 느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사람다워질 게 분명하다는 그것 하나 믿고 있다. 교사면서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대학동기가 훈수를 뒀다. 부단히 써야 좋은 글이 나오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남이 쓴 좋은 글도 부단히 읽어야 한다고. 그러니 읽는 걸 게을리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읽다 보면 뭔가가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겠는데 '어리석게 우직해라'로 들려 훈수치곤 참 건조했다.)

작가의 이전글 여자 안 그립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