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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22. 2024

소극적 반항

   구레나룻은 살려두고 덥수룩한 숱을 살짝만 정리해 달라고 주문하면 도대체 그 '살짝만'이 어느만큼인지 가늠이 안 된다. 머리통을 수도 없이 깎아제꼈는데도 말이다. 특히 초면인 손님이라면 마치 '살짝만'이라는 마지노선을 놓고 벌이는 무언의 쟁투나 다름없는 긴장 관계에 돌입한다. 앞거울을 째려보면서 깎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손님의 눈초리에 간담이 서늘하다. 손님 다루는 데 제법 이력이 붙었다고 자부하건만 그런 식의 긴장감은 여전히 불감당이다. 행여 손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못마땅한 짓이 벌어지기라도 하면(깎새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다 해도) 난리가 난다. 이를테면 치렁치렁한 숱을 솎으려고 숱가위를 들면 쌍수를 들어 말리거나 머리털이 늦가을 우수수 떨어진 낙엽처럼 지상가상없이 잘렸다 싶으면 작업을 중단시키고 거울 보기 바쁘다. 영 마음에 차지 않아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안색은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다. 하여 그런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일단 템포를 늦춰야 한다. 괜스레 점방 문을 열었다 닫는다든가 창문 너머 뒷마당을 슬쩍 내다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과열된 공기를 식혀야 한다. 안 그러면 정말 터져 버려 꼴사나운 지경을 못 면한다.   

   작업을 간신히 마치고 커트보를 거두고 나서도 문제다. 두말없이 나가는 법이 없어서. '살짝만' 손님일수록 커트가 끝나면 머리를 감아서 스타일이 맘에 드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절차를 꼭 밟는다. 여의치 않으면 여지없이 수정을 요구한다. 손님이 누구든 예외없이 한 번 바리캉을 들면 심혈을 기울여 커트 작업에 임하는데도 불구하고 커트보를 두 번 치게 해 깎새 자존심에 기어이 기스를 내고 마니 김장철 배추 절이듯 그 잘난 머리에다 굵은 소금을 확 뿌리고 싶은 충동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한번은 구레나룻이 짝짝이라는 둥 옆머리를 덜 깎았다는 둥 군소리를 쫑알거리다 못해 땅이 꺼져라 한숨까지 푹푹 쉬는 손님이 계좌이체로 요금을 보냈다면서 점방 문을 나서려는 걸 "어,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되받고 가로막은 적이 있었다. 돈이야 진작에 들어왔지만 받을 사람이 안 들어왔다는데 그냥 나가 버리면 먹튀임을 자인하는 꼴이니 확인이 될 때까지 잠시대기할 수밖에 없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건 말건 못마땅한 시선으로 쏘아대건 말건 알 바 아니다. 영겁 같은 십수 초 정적이 흐른 뒤 휴대폰 화면만 응시하던 깎새 입에서 마침내 "고맙습니다"가 떨어지자 뒤도 안 돌아보고 휙 나가는 손님. 똥줄 타는 더러운 기분이 어때? 깎새의 소극적 반항이 성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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