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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06. 2024

'우와!' 성애자

   말끝마다 '우와!'라는 감탄사를 붙이는 말버릇이 있는 손님은 그 말버릇으로 구현해내는 시니피에가 해가 바뀌었는데도 똑같다. 레퍼토리가 어찌 그리도 빈약한지. 그가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화두로 삼는 건 프랑스와 중국, 독일로 대표되는 이른바 서구 선진국 혹은 대국이다. 마누라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을 한다는데 그 세 나라에 꿀단지를 파묻어 놓지 않고서야 (거짓말 좀 보태)커트보가 침에 다 젖도록 예찬을 늘어놓는 그 저의를 알 길이 없다. 그 '우와!' 성애자를 대하는 깎새의 태도도 일 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하여 일 년 전 글을 지금 내놓아도 별반 고칠 게 없다. 희한한 세상, 웃기는 사람은 도처에 깔려 있다.

   프랑스란 나라가 참 대단하다고 서두를 뗐다. 왜 대단한지를 설명하려고 충청도 어디메쯤 소재한 프랑스(혹은 프랑스 국적의 회사)가 운영한다는 골프장을 예로 들었다. 그 골프장 건물 바닥재 공사를 맡아 들렀었나 보다. 골프장이야 어딜 가나 다 넓으니 골프장 면적으로 프랑스의 위대함을 따질 건 아닐 테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뭔가를 탁 꺼낼 성싶어 이어질 예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일단 그린피로 서두를 장식했다. 한 사람 앞에 10만 원 내외밖에 안 든다는 게 아마 국내 여느 골프장 그린피보다 저렴하다는 뜻이렷다. 그 다음은 또 뭘지 궁금해 미치려는 찰나, "프랑스란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나란지 압니까?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느닷없이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통을 제조하는 국내 소재 프랑스 회사를 예로 들었다. 그 프랑스 회사가 만드는 기름통을 안 쓰는 완성차업체가 이 세상에는 없다면서 그 분야의 특허권을 가진 독점 업체라는 설명까지 힘주어 강조했다. 기름통 만드는 프랑스 업체가 프랑스가 왜 대단한 나라인지 납득시키려는 근거로 적합하고 충분한지 곰곰 곱씹었다.

   염색약 바르고 20분이 흘러 샴푸를 하려는데, "중국이란 나라가 말이죠, 우와!" 이번에는 중국 타령이다. 제주도의 한 호텔 객실 바닥 공사 수주를 따서 가봤더니 중국업체가 운영하는 데였다나. 엄청나게 드넓은 부지도 부지지만 건물 전체가 유리로 도배돼 채광이 어마어마하다면서 불쑥 제주도 땅이 거진 중국사람 손에 넘어갔다고 떠벌이더니 "중국이란 나라가 참 대단합니다. 우와!" 숨이 넘어갈 판이었다. 이쯤되니 종잡을 수가 없다. 프랑스 기름통 회사와 제주도 중국 호텔이 프랑스와 중국의 위대성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염색한 머리를 감겨 줬더니 행굴 생각은 안 하고 "우리나라 지나다니는 차 좀 보세요. 독일차 아닌 게 어딨습니까? 독일이란 나라 참 대단합니다. 우와!" 더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선진국이란 선진국은 다 읊을 기세라서.

   '우와!'성애자가 개소리괴소리 지껄인 건 아닐 테다. 최소한 보고 듣고 겪은 체험에서 비롯된, 이른바 서구 선진국 혹은 대국을 향한 경모와 숭배를 그 나름대로 표현한 바임을 모르지 않는다. 허나 이런 식의 '우와!' 화법은 색다르지만 곤란하다. 기만당한 듯 언짢다가 나중엔 지친다. 처음 접하는 신기한 화법이라 기록으로 남기지만 다신 듣고 싶진 않다. 

   일 년이 지나 멋모르고 다시 들었지만 그 입 다물게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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