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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12. 2024

에트랑제

   언제부터인가 깎새 점방에 에트랑제 몇몇이 주기적으로 드나든다. 한국말이 유창한 베트남 남자는 한국여자와 결혼한 영주권자로 무심코 보면 영판 한국사람이다. 앞머리가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져 상고머리로 짧게 치면 그렇게 단정해 보일 수가 없다. 안면 텄다고 몇 마디 물어보면 대답이 곧잘 돌아오지만 앞에서 밝힌 단편적인 사실이 전부다. 어수룩한 깎새한테까지 에트랑제 특유의 경계심을 드러낼 건 없지만 말하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말 시키는 짓 따위는 깎새도 취향은 아니다.

   또 다른 베트남 남자는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안녕하세요'나 '얼마예요?'가 그의 입에서 들었던 한국말 전부다. 극구 친구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여자를 대동하는데(아주 짧은 영어로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여자한테 물었더니 'just friend'라는 답이 돌아와서 알게 됐다) 학생인 성싶다.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서 한국에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더니 말끝에 '유니버시티'라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다. 베트남 사람 머리라고 해봐야 그 둘밖에 안 다뤄봤지만 까다롭기 그지없는 참머리라 손품이 참 많이 간다. 

   필리핀 남자는 두 베트남 사람 중간쯤 되는 한국어 수준이다. 깎새가 한국말하면 희한하게 말귀를 거진 알아먹는다. <범죄도시 2> 영화에서 괜히 욕지거리 내뱉었다가 "욕하지 마! 한국말 다 알아!"하던 베트남 경찰이 자꾸 떠올라서 말을 조심조심 가려서 한다. 땅딸막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가 핸디캡일 만도 하지만 입성하며 머리스타일까지 깔롱지기기 대마왕이다. 엊그제도 길게 장발을 해가지고 와서는 살짝만 골라달래서 원하는 대로 해주긴 했지만 영 마뜩잖았다. 깔롱이 아무리 좋기로서니 두상에 맞아야 어울리는 법이다. 약은 약사에게, 머리는 깎새에게! 하여 필리핀이 영어를 쓰는 나라라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는 깎새가 안 되는 영어로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I Think, (거울 앞에 붙여둔 헤어스타일 사진 ②스포츠형에 가까운 높은 상고형, ③젠틀맨 스타일인 중간 상고형 둘을 번갈아 가리키며)You best hair style. two and three is mixing. OK?"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다음에, 다음에"라고 해서,

   "This summer 싹둑싹둑. OK?"

   다짐을 받으려고 물었더니,

   "알았어요."

   안 되는 영어로 애써 씨부렸더니 한국말로 대답하니 나 원 참.​​​

   큰딸이 싱가폴, 일본 여행을 가면서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까닭은 번역기를 갖다대서 그랬다. 점방을 찾은 에트랑제에게 할 말 많고 듣고 싶은 것도 많은 깎새는 그들이 다음에 찾았을 때 만약 대기 손님이 없으면 어디 한번 번역기를 갖다대고 오지랖을 떨어볼까 고심중이다. 그들은 왜 한국에 왔을지, 한국살이는 재밌는지, 한국에서 뭘 얻고 돌아가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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