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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16. 2024

뜻대로 안 되네

   너덧 달에 한 번씩 봉두난발한 장발족이 점방에 나타나면 일단 오금이 저리고 그 다음엔 분통이 터진다. 남들 두서너 배는 더 고된 노동 강도도 부치지만 주문은 또 어찌나 요란하던지 '중후한 대기업 중역 스타일' 운운하며 모델 사진이라고 보여주는 스마트폰을 뺏어다 그 면상에 도로 집어던지고 싶어 미칠 뻔했다. 그렇게 깔끔 떠는 인간이 너덧 달 동안 그 머리로 어떻게 참았을꼬? 너덧 달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하게 찾아 주니 이보다 더 충성스러운 손님이 어디 있냐는 듯 단골 코스프레하면서 으스대는 꼴은 또 어찌나 눈꼴사나운지. 상도의라는 개념을 도대체 알기나 하는 건지 커트요금 5천 원으로 뽕을 뽑겠다는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파나소닉 ER1511 바리캉은 한 대 가격이 20만 원 가까이 하고 날만 따로 구입하면 4~5만 원 한다. 바리캉을 3대나 비치해 두고 번갈아 쓰는 까닭은 마모로 인한 교체를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안간힘이다. 감가상각을 줄여 보겠다는 깎새 노력이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창출이란 상술에서 기인한 바이지만 그렇다고 초를 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치렁치렁, 곱슬곱슬, 빳빳 3종세트에 안 감은 지 며칠째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게 번들거리는 데다 떡까지 진 머리카락에 갖다 대면 바리캉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가윗날 무디고 바리캉까지 시원찮은 커트점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하여 자식 같은 기구에 위해를 가하는 무도한 손님을 진상으로 규정해 척결하려는 시도는 깎새로서는 불가피한 자위권 발동이다. 요는 그런 진상을 뒤탈 없이 깔끔하고 세련되게 정리할 수완 되시겠다.  

   "머리숱이 엄청난데 머리결까지 거칠면 참 곤란합니다."

   "…"

   "선생님,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바리캉 한 대에 20만 원을 호가합니다. 날만 해도 4~5만 원씩 하구요. 5천 원 요금 받아서 기구만 사다가 쪽박 차게 생겼습니다."

   "…"

   "선생님 머리처럼 숱 많고 곱슬기 센 머리에 남아나는 바리캉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들리시죠? 날 안 나가서 끽끽거리는 소리를."

   "…"

   "다음번에 오시면 추가요금을 더 받을까 합니다. 서운하다 마시고 제 사정도 이해해 주십시오."('다음번에는 안 보기로 하자. 여기 말고 딴 데 가서도 좋은 소리는 못 듣겠다만 아무튼 우리 악연은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기로 하자.')

   "그래요."

   지난 번에 작정하고 추가요금까지 들먹이며 세게 나갔으니 예상대로라면 기분 더러워서라도 다신 안 나타나야 정상인 진상이다. 하지만 너덧 달 전처럼 봉두나발을 해가지고 이발의자에 앉아 있고 맥 풀린 다리로 우두망찰해 버린 깎새였다. 재차 추가요금을 꺼내 내쫓으려니 단작스럽기 짝이 없다. 기구를 놓아둔 곳에서 바리캉들이 울부짖는 환청이 들린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랬다고 추가요금 3천 원 내고서라도 굳이 오겠다는데 무슨 수로 막을쏜가.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세상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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