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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18. 2024

환경미화원에 호의적인 까닭

   일요일 새벽 6시30분. 점방문을 열고 짐을 풀기도 전에 누군가가 스윽 들어왔다. 

   "이 시간대에 문을 연다고 일전에 들은 적이 있어서."

   "6시30분에 출근해 7시30분에 점방 문을 열지요. 앉으세요. 오신 분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구역을 담당하던 환경미화원이다. 전날인 토요일 들렀다가 대기석에 앉은 서너 명을 보더니만 그길로 돌아서는 걸 깎새가 보긴 했다. 마음 같아서는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라고 만류하고 싶었지만 경황이 너무 없었다. 

   "윗동네로 구역이 바뀌었어요. 어제는 짬이 살짝 나 들렀는데 기다리자니 촉박해서요."

   "토요일은 손님들로 자주 밀리니까 오늘처럼 일요일 아침에 오세요. 출근해 점방 문 열기 전까지 할 일이 좀 있으니 오늘처럼 너무 일찍은 곤란합니다. 7시30분쯤이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머리 깎겠다고 일요일 새벽 댓바람부터 들이닥친 이를 살갑게 대할 만큼 호인은 아니다 깎새가. 그럼에도 그에게 직수굿한 까닭은 그가 환경미화원이기 때문이다.

   깎새가 환경미화원을 호의적으로 대하게 된 건 개업하고 몇 달 안 지났을 무렵 당시 이 구역을 담당하던 환경미화원을 만나면서 비롯되었다. 그와 나눈 대화는 꽤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일반공무원과 처우가 비슷한 공무직임에도 불구하고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 박탈감에 공감하는 바 컸다.  

   2022년 7월말, 무더위가 한창인데도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환경미화원이 들어왔다. 자란 만큼만 깎아 달라고 주문하고 묵상하듯 눈을 감아 버린 사람한테서 묘한 기개 같은 게 느껴졌다. 형광등 작업복에 눈만 빼꼼 나오게 두건을 덮어쓴 채 거리에서 빗질을 하는 이와 말문을 트게 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구청 소속입니까, 시청 소속입니까?"

   "구청 청소행정과입니다."

   "처우는 괜찮나요?"

   "엄연한 공무원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연속으로 던진 질문에 단답형 답변으로 일관하는 상대를 대화 속에 더 머물게 하자면 좀더 임팩트 있는 질문이 필요했다.

   "3D라고 하잖아요.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 남다른 사명감이 아니면 고될 수밖에 없겠어요."

   "듣기 좋은 말 다 빼고, 돈 때문에 하는 거죠."

   시니컬했지만 직관적이다. 이런 답변 좋아한다. 깎새의 주체스러운 입을 다물게 하자면 어쩔 수 없겠다 싶었는지 마지못해 부연하는 환경관리원.

   "어렵게 시험 봐서 들어온 게 6년 전인데 한 3년쯤 지나니까 환멸이 들더군요. 상대적 박탈감이랄까요. 같은 공무원이라도 천한 사람 취급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일껏 비질 다 해놓은 걸 뻔히 보고도 담배 꽁초를 버리는 젊은이, 자기 땅 청소는 왜 안 해 주냐고 따지길래 국유지만 관리하게 되어 있다고 대답했더니 청소부가 자길 무시한다면서 구청에 민원을 넣은 주민. 요즘처럼 빡빡하고 일자리 궁한 시절에 안정적으로 벌어먹고 살 만하니까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할 짓 못되는 직업입니다."

   주기적으로 관할 구역이 바뀐댔다. 바뀔 때 바뀌더라도 오며가며 들러서 목도 축이고 급한 볼일도 보시라는 친절에 슬쩍 감동했는지 묻지도 않은 속엣말을 더 꺼냈다. 이력이 특이했다. 구청 들어오기 전 30년 가까이 운동권에 몸을 담았더랬다. 주종목은 통일운동인데 그 덕에 콩밥을 자주 맛봤다나 어쨌다나. 환경미화원으로만 썩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청소하면서 통일운동 할 거냐고 물었더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뭔가 뜻깊은 걸 계획 중이랬지만 그게 뭔지는 말을 아꼈다. 들어올 때부터 기운이 남다르긴 했었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 같은 게 도사리고 있다고나 할까. 

   사람이 궁금해지면 다음을 손꼽아 기약하기 마련이지만 아쉽게도 더는 점방을 찾지 않았다. 비밀스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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