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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20. 2024

발가락도 닮았을까

   막내딸은 깎새 아빠랑 취향이 어슷비슷하다. 한번은 제 플레이리스트라며 보여 주던 노래 목록 앞쪽에 요즘 세대들 입맛을 맞추자면 음악적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가수와 노래가 즐비해 놀랬다. 특히 '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가 최애곡 중에 하나라며 자랑을 일삼자 동질감을 넘어 묘한 감동으로 전율이 일 지경이었다. '여행스케치'야말로 깎새 아빠 청춘기를 감수성으로 수놓았던 유력한 가객 중 하나였으니까. 팀 리더인 남준봉이 해외 유학을 떠나기 전 음악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취입한 「여행스케치 5집 남준봉」은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는 고릿적 얘기('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진다'란 표현은 카세트테이프가 무엇인지부터 이해시키느라 애를 먹었지만)를 꺼내자 그럴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임으로써 공감을 표하는 녀석이 어찌 그리 이뻐 보이는지.

   내친 김에 대학 시절로부터 원통이란 지역에서 원통해서 못살 뻔했던 군 생활, 갑갑한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던 총각 시절에 이르기까지 듣고 또 듣던 아비의 플레이리스트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도 지겨워하기는커녕 진지하게 경청해 주니 이보다 더 기특할 수가 없다. 더 이쁜 짓은 당시 아비 애창곡이던 이소라 1집 <처음 느낌 그대로>, 일기예보 2집 <떠나려는 그대를>, 더 클래식 2집 <여우야> 따위를 그 자리에서 바로 유튜브를 뒤져 듣는 성의를 보이니 누구네 자식인지 참 잘 낳았다. 

   막내딸은 복고적이다. 비단 음악 취향에만 국한된 건 아닌 성싶다. 아빠와 엄마의 소싯적 얘기를 귀담아들으려 하고 자기 땅꼬마 적 에피소드에 배꼽을 잡고 쓰러진다. 가물가물해지는 과거 속 아스라이 추억의 파편을 줍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는 막내딸은 착즙하듯 기억을 검질기게 곱씹으며 흔적(글)을 남기려고 아득바득하는 아비와 참 많이 닮았다. 

   잠자는 녀석한테 슬그머니 다가가서는 혹시 발가락도 아비를 닮았는지 쳐다보는 깎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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