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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22. 2024

점방 안 팝니다

   휴무일 다음날 점방 문에는 '매물 구함', '상가 임대 매매', '비밀 보장 매수인 대기 중' 따위 문구가 즐비한 명함지가 심심찮게 붙어 있다. 점방 문이 열려 있을 때는 코빼기도 못 보던 것들이 겨우 하루 문을 닫은 사이 덕지덕지한 건 그 명이 오늘내일하는 상가라고 지레짐작한 거간꾼들이 미리 점찍어 두려는 수작질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심이 무척 합리적인 까닭은 작년 봄 한 부동산중개인이 보여준 과잉 행동 때문이겠다.  

   한 여자가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통통 튀는 목소리로 "손님은 아니고요" 운을 떼더니 목소리 만큼이나 주의를 끄는 샛노란 뭔가를 지갑에서 꺼내 내밀었다. 그건 그 여자가 동래를 근거지로 하는 부동산중개사사무소 실장으로 맹활약 중이라는 걸 장황하게 과시하는 명함이었다. 동래 공인중개사께서 거리가 한참인 이곳 부산진구까지 왕림한 까닭이 의아스러울 즈음, 혹시 점방 내놓을 의향이 없냐고 대뜸 묻는 게 아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 무슨 뚱딴지처럼 난데없는 소린가 싶어 생면부지인 그 여자를 빤히 노려보는데,

   "제 고객이 이 동네로 이사를 올 예정인데 가까운 데에다 미장원도 차리고 싶어 하셔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거간꾼 얘기로는 단골 고객께서 남자 커트를 전문으로 하는 미장원을 열고 싶다나. 남자머리 커트 기술쯤 어디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넘친다면서. 하여 이사할 동네 주변 남성 커트점 매물을 일순위로 알아보라는 지령이 떨어졌단다. 그길로 마땅한 물건을 찾아 발품을 꽤 팔았단다. 그러다 버스 다니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유동인구도 솔찮은 깎새 점방이 탐나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가 찾아왔다는 사연이었다.

   "제 고객 요구사항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곳이라 일전에 들렀었는데 문이 닫혀 있더라구요."

   중개인 말하는 본새가 조금 묘했다. 손님들로 미어터지는 점방은 아닌 게 분명하다, 손님이 오죽 없으면 평일에 문을 다 닫았을까, 안 되는 장사 억지로 붙들고 있지 말고 값 좋게 쳐드릴 테니 매물로 내놓으시라. 뭐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게 영 못마땅했다. 깎새만이 느끼는 자격지심이었을까. 

   "여기 들어온 지 1년밖에 안 됐구요, 휴무날에 오셨나 보구나. 화요일은 쉽니다."

   "아, 그러셨구나."

   잠시 쭈뼛거리더니 섣부른 짐작으로 괜히 심기 건드려봐야 이로울 게 없겠다 싶었는지,

   "장사는 잘 되시죠?'"

   태세를 곧바로 전환했다.

   빈정이 상해 길게는 더 말 섞기가 싫었던 깎새가,

   "그럭저럭."

   딴짓하며 우물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아깝고 빈손으로 돌아가서 고객을 실망시키는 건 죽기보다 더 싫었던지 여자 거간꾼이 다시,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다들 아우성인데. 내놓으실 계획이 전혀 없으실까요?"

   노소를 불문하고 여자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깎새이지만 인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려 하자 숫제 말문을 걸어 닫았다. 이럴 땐 묵묵부답이 상책이라는 듯이.  

   깎새가 대답이 없자 무안해하는 여자 거간꾼이 치렁치렁한 머리만 매만지더니,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대박나세요."

   필시 덕담일 텐데 떨떠름하기는 처음이었다. 볼일 끝났으면 얼른 나가 주십사 무관심으로 일관하려는데 아무래도 찝찝했는지 중개인이 나가려다 말고 뒷수습한답시고 마지막으로 씨월거렸다. 

   "휴무날 아닌 날에도 들렀었는데 그날은 마침 손님이 되게 많더라구요. 바쁘시길래 들어갈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손 흔들어봐야 지나간 버스요, 시위 떠난 화살이었다.

   해프닝이 있고 몇 달 뒤 깎새 점방 맞은편, 그러니까 2차선 도로를 건너 오른편으로 10m쯤 지나 미장원이 새로 생겼다. 터줏대감 격인 오래된 미장원이 불과 몇 발자국 옆에서 버티고 서 있는데도 말이다. 시설비가 꽤 들어간 듯 외양이 요란한 점방이 동래 중개인이 알선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반경 10m도 채 안 되는 구역에 미장원이 두 군데, 남자 커트점이 몰려있는 게 정상적인 광경은 아니다. 감자탕 점방 바로 맞은편 건물 1층에 감자탕 점방이 새로 들어선 것도 너 죽고 나 살자 아니면 제 살 깎아먹는 짓 말고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을 나무랄 수야 없겠으나 상도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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