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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25. 2024

봄기운에 홀렸다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 지난 토요일 낮, 난데없이 완연한 봄기운으로 어리둥절했다. 톡으로 마누라가 밖에 나가보라고 재촉했다. 완전 봄날이라면서. 나가보긴 했지. 덜 마른 수건 널러 점방 뒷마당엘. 볕이 따사로워 노곤해졌다. 

   다 집어치우고 봄놀이나 떠날까. 잇달아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샴푸하기만을 기다리는 손님 둘은 아랑곳없이 말이다. 는실난실 봄기운에 홀려 점방 망할 망상만 대중없어라. 좋지, 봄놀이.

   이왕이면 탁 트인 바다 전경이 펼쳐진 곳이면 좋겠다. 춘정 돋우는 마파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정자에다 돗자리를 깔자. 바리바리 싸들고 온 막걸리 댓 병과 모듬전, 두부김치, 보쌈, 골뱅이 무침, 홍어삼합 따위 안주 일체와 후식으로 제철 과일까지 잊지 않고 손가락만 까딱해도 집을 수 있게 늘어놓고 이내 나동그라져서는 해가 이울 때까지 '팔방에서 햇빛이 어떻게 사물의 하루를 거두어 가는지'를 유유자적하게 누린다면 그보다 더한 신선놀음이 어디에 있으랴.

   난데없는 봄기운에 살짝 가출한 정신머리가 손님 샴푸할 시간이 박두하자 후다닥 돌아왔다. 


   정자란 집의 한 종류다. 벽이 없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집. 이런 집은 놀거나 모이기 위해 세우게 마련이다. 벽이 없으면 사방을 바라볼 수 있다. 팔방에서 햇빛이 어떻게 사물의 하루를 거두어 가는가를 알 수 있다. 정자는 여유와 관조의 다른 이름이다.(성석제, 『즐겁게 춤을 추다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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