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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26. 2024

공허한 구호

   일요일 오후 KBS2 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이하 <사당귀>)프로그램이 끝나는 걸 신호로 평소보다 좀 일찍 점방 문을 닫곤 한다. 일요일 오후 6시 즈음이면 다음날 출근 걱정으로라도 사람들이 잘 나돌지 않아 거리가 한산한 편이고 음식점 몇 군데 빼고는 대개 파장 분위기라서. 하여 일요일 오후 4시40분부터 방영하는 그 프로그램을 습관처럼 본 지가 제법 됐다. 헌데 요새 방송분이 좀 이상하다.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대한민국 보스들의 자발적 자아성찰 프로그램'이라는 기획 의도에 기대어 출연하는 보스들이 하나같이 트로트 가수들로 천편일률적이라서.

   트로트 가수 진성은 KBS 설 특집 <진성 빅 쇼> 무대에 오른 뒤 <사당귀>까지 출연해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줬다. 진성 보스에 이어서 트로트 가수 장민호가 등장해 역시 자기 콘서트에 얽힌 비하인드와 콘서트 장면까지 실황 중계하듯 방송을 탔다. 다음주 예고편에선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KBS관현악단과 공연을 펼쳤던 KBS <김호중의 더 심포니>에 관한 에피소드를 전해줄 예정인가 보더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트로트 열풍이 거세고 트로트 가수, 특히 <미스터 트롯>이니 <미스 트롯> 따위 트로트 경연 대회 수상자들이 가요계를 견인하는 전성시대인 건 분명하지만, 좀 이상하다. 공영방송 KBS에서 트로트 가수 일색인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리는 게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인기스타들을 등장시켜 시청률을 제고하고픈 방송 관계자들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공영방송이란 곳에서만큼은 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트로트에 열광하는 시청자 맞은편에서 시큰둥해 있는 다른 시청자까지 보듬어 균형 있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더 그들답지 않을까. 수신료는 그러라고 주는 국민들의 세금이다. 하지만 요즘 KBS는 시류에만 영합하는 이익집단인 양 비루해 보인다.

   시청자에게 채널 선택권이란 게 있듯 프로그램 선택권이란 것도 있다. 시청자가 위화감, 거부감 없이 무난하게 시청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건 공영방송이라서 피해서는 안 될 숙명이다. 하지만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KBS 구호가 왜 이다지도 공허하게 들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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