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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27. 2024

유머 공식

   '니주(にじゅう, 二重)를 깐다​'라는 방송가 속어가 있다. '복선을 깐다'라는 의미인데 밑밥을 적절하게 까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반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노린다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잔사설만 슬쩍슬쩍 늘어놓아 감질나게 만드는 빌드 업.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맨 마지막에 '빵!' 터뜨려 의외의 결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능청스러움. 유머의 공식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보겠다.

   인생 최초의 기억이 뭐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마리 씨는 아득한 과거의 체험을 되살렸다.

   "무섭고 캄캄하고 좁고 축축한 곳이었어요. 물 같은 게 가슴께까지 차 있는데 당장이라도 그대로 가라앉을 거 같았어요. 머리 위로는 구멍이 동그랗게 있고 거기서 빛이 들어왔어요. 숨 막히고 고통스러워서 죽을힘을 다해 바동거리는데, 그때 구멍 밖에서 커다란 손이 들어오더니 내 몸을 잡고 밖으로 끄집어내줬어요."(A)

   실감나는 마리 씨의 설명을 들은 갑작스런 질문을 한 사람이,

   "우와, 사람들한테 이 질문 많이 했었는데, 태어나던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사람이 자기에 대해 기억하는 건 대개 만 세 살 전후부터라고 하니까요."

   하도 감격해하길래 오해하게 내버려뒀는데 마리 씨 체험은 그녀가 어머니 배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 아니다. 마리 씨는 말한다.

   "당시 우리 식구가 세 들어 살던 집의 재래식 변소에 빠졌다가 구출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내가 인생을 의식하게 되었다면 그 집의 변소는 나에게 산도産道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B)

   러시아어 동시통역가이자 작가였던 고故 요네하라 마리가 쓴 『유머의 공식』 (이현진 옮김, 중앙북스, 2007) 중 한 대목을 옮겨 봤다. 친구이자 프로듀서인 친구와 나눈 실제 대화라는데 원래는 친구 질문에 B를 먼저 꺼내고 A를 이어서 말했다고 마리는 밝힌다. 그러다 보니 얘기는 재미랄 게 없이 무미건조했을 뿐이었다나. 그걸 유머러스하게 재구성(A->B)한 게 위에 소개한 내용이다. A 얘기만으로 출산 직전의 긴박감을 태아가 생생하게 기억하듯 연출하다가 B 얘기로 의표를 찌른다. 피식,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절로 튀어 나오고 반전으로 마무리된 한 편의 유머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요네하라 마리가 말하는 요령이다.


​   먼저 이야기의 각 구성 요소 안에서 순서를 마지막으로 옮기면 반전이 될 만한 요소를 찾아낸다. 다음에 그것을 반전으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다른 구성 요소의 순서를 바꾸고 자구字句를 수정, 삭제, 가필하고 등장인물의 설정도 변경한다. 그러면 유머가 한 편 완성된다.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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