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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04. 2024

비책

   손님이 깎새를 제 전담 이용사로 명토 박게 만드는 비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리 유별나지 않은 동작에서 손님을 사로잡는 마력은 비롯될지니. 아래 일화를 읽어 보시고 그 비책을 암시하는 단어를 찾아 보시라. 단어는 두 개라는 게 힌트다.

   뻗치는 머리라서 높고 짧게 깎아달라고 손님이 주문했다. 흔히 장교머리라고 불리는 높은 상고가 적당하겠다 싶어 열심히 깎아댔다. 가이드라인이라고 부르는 커트선은 통상 U자를 그린다. 옆머리 높이에 따라서 뒷머리 높이는 손님 두상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무난하게 깎는 와중이었다. 무성한 뒷머리 숱을 한창 쳐내고 있는데 뒤통수에 눈이 안 달린 손님은 뒤가 영 켕겼나 보다. 너무 높이 깎는 거 아니냐는 손님 목소리에는 전혀 여과되지 않은 짜증이 묻어나와 별안간 점방 공기를 지배했다. 적정선을 지켜 지극히 정상적으로 깎고 있던 깎새가 되레 빈정이 상했다.  

   낯이 설어 처음 들른 손님인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머리를 맡겨 놓고 깎새를 못 미더워하는 행상머리가 하도 같잖아서 "적당하게 깎는 중인데요" 퉁명스레 응답함으로써 단절의 차단막을 치려니까 거울 속에 비친 손님 표정에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이런 유형의 손님은 특징이 있다. 깎새 앞에서 점잖은 척 하지만 한번 눈 밖에 나면 재방문은 거의 없다. 안 보면 그만이지 싶다가도 이러다간 남아날 손님이 없겠다고 자책하는 깎새. 사람 상대하는 장사치가 손님을 자꾸 가리면 곤란하니 앵도라진 손님 회심할 방도나 얼른 찾아 보자며 대갈빡을 엄청 굴렸더랬다. 

   깎새 못지않게 손님이 느끼는 깎새 첫인상도 별로인 건 분명했다. 그걸 호감으로 반전시키자면 이발밖에는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머리카락이 뻗치는 머리를 다 깎고 나서 한번에 'OK!'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자란 부분을 깎고 나면 각이 지는 바람에 두루뭉술하게 다시 고쳐 달라는 A/S를 안 들으면 오히려 서운하다. 일주일 뒤 머리카락이 자라 또 삐져나올갑세 커트할 때만이라도 그 염병할 뻗치는 걸 모조리 잡고 싶은 심정은 아는 사람만 아는 뻗치는 머리의 애환이다. 작업을 마친 뒤 머리카락 털이개부터 들지 않고 가위를 다시 든 깎새가 손님 머리를 빙 둘러가며 일정 각도를 유지하며 옆가위질을 해댔다.

   "선생님 머리 스타일을 가진 손님들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합니다. 암만 잘 깎아도 튀어나온 것 같고 그게 그렇게 또 스트레스라더군요. 삐죽삐죽 튀어나와 지저분한 부분은 옆가위질로 대충 정리했습니다."

   "아, 예. 원래 가던 데가 있는데... 제 스타일을 잘 모르셔서 뒷머리를 높이 깎는 줄 알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뒷머리를 정리하느라 빗놀림이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 그렇지 가이드라인을 올리지는 않았어요. (뒷거울을 들어 뒤통수를 보여주며)한번 보세요."

   "아, 그렇네요."

   "다음에 오시더라도 마음에 안 드시면 주저없이 말씀하세요. 이왕 어려운 걸음하셨는데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깎아드려야 되지 않겠어요? 다른 손님이 대기하고 있으면 좀 곤란하지만 오늘처럼 널널하면야 무슨 짓이든 못하겠습니까?"

   이후로 둘 사이의 공기가 부드러워졌고 이 양반 단골이 됐다.

   찾았는가, 비책을 암시하는 두 단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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