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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13. 2024

씨상이 화신化身​

   어떤 사람이 일전에 했던 말을 토씨 거의 안 틀리고 매번 주워섬긴다면 그의 기억력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그 사람 인식 체계를 투미하게 덧칠을 해댄 상대의 미필적 고의를 탓해야 할까.

   주차장 관리요원이라고 밝힌 한 단골은 무척 점잖아 보이는 외양과 달리 느닷없는 말주변으로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재주가 비상하다. 요는 본인이 궁금해서 묻는 말이 상대방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겹다는 게 문제라서 그렇지. 무엇을 알고 싶어 묻는 게 아니라 실없이 지껄이는 행위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이상 습성이라면 정신과 상담이 시급하다. 매달 똑같은 질문에 똑같이 대답하는 것도 귀찮기 짝이 없는데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말을 섞고 마는 자신이 너무 싫은 깎새다.    ​​​​

   ​"주차장 관리요원으로 격일제 근무를 해요. 그제 화요일 오려다가 오늘(목요일) 왔어요."

   "아, 예."

   "다른 이발소는 보통 언제 쉽니까?"

   (또 시작이군.)

   "요일을 정해 놓고 일괄적으로 쉬는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미장원은 언제 쉬죠?"

   (지겹지도 않니?)

   "나야 모르죠"

   (오늘만은 일절 대응하지 않으련다.)

   "동네 보니까 일요일 쉬는 미장원이 태반이던데."

   "…"

   "이발소도 일요일에 많이 쉬지 않을까요?"

   "…"​

   "언제 쉽니까?"

   "화요일 쉽니다."

   "이발소들은 보통 화요일 쉬긴 하더라."

   "독실한 원장은 일요일에 쉬기도 해서 모두가 일괄적으로 화요일 쉰다고는 볼 수 없어요."

   "그럼 주인장은 일요일에도 문을 여네요?"

   "예."

   "남들 쉴 때 일하면 매상 올리고 좋지 뭐."

   "…"​

   "그럴 바에야 화요일도 문 열어요. 손님 왕창 끌어모으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사람을 쏘아보는데 그 전에도 꼭 이랬다. 이런 걸 기시감이라고 하는 건가.)

   "그럼 나는 언제 쉽니까?"

   "…"​

   ​'씨상이'라는 경상도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실없쟁이'와 같은 말로 쓰인다. 즉 실없이 구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그 사람, 씨상이 화신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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