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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27. 2024

승리는 자식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

   승리의 비책에 누구보다 밝았던 그(손무)도 사랑을 이야기했다. 장수가 군대를 통솔하면서 병사들을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했다. 장수가 병사들을 어린 아이처럼 돌보기 때문에 함께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갈 수 있다. 또 장수가 병사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죽을 수 있다. 그런데 후하게 대우해주고서라도 부리지 못하고 사랑으로 아껴주고서도 명령을 내리지 못하며, 어지러워져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마치 버릇없는 자식과 같아서 쓸모가 없다고.

   ​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승리라는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실제로 그의 이 같은 이야기를 전쟁터에서 실천한 사람이 있었다. 그와 나란히 최고의 병법가로 손꼽히는 오자, 곧 오기吳起는 위나라 장군이 되어서 말단 병사의 종기를 자신의 입으로 빨아내는 극진한 부하 사랑으로 유명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을 매번 승리로 이끌어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가 장군의 신분으로 말단 병사의 종기를 직접 빨아주었을 때 그 병사의 어머니는 통곡했다.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그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도 종기가 있었는데 오기 장군이 그것을 빨아서 치료해 주었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다 결국 죽고 말았다고 말했다. 전쟁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가장 위험한 수단인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위대한 승리는 적국을 깨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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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입대를 앞둔 청년이 아주 짧게 깎아 달라고 주문했다.

   "상륙돌격형으로?"

   우스개로 응수하며 자칫 비장해질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괜히 튀어 보이기 싫으니 짧은 스포츠형으로 부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그가 다큐로 돌아온 셈이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곧잘 점방을 찾는다. 대부분은 애지중지하던 머리카락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자 육군 규정을 자의로 해석하면서까지 덜 깎으려는 미련을 보이지만 해병대 청년은 말없이 눈까지 감고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대조를 이뤘다.

   그런 청년을 보는 깎새는 해병대를 나오지 않았음에도 애틋했다. 가뜩이나 제 일신의 안위만을 귀하게 여길 뿐 해병대 정신이고 체면이고 다 내팽개친 버러지만도 못한 지휘관들 때문에 발칵 뒤집어진 해병대에 왜 꼭 지금 입대해야 하는지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마 그런 오지랖을 떨지 못하는 대신 꺼낸 격려라는 게 겨우,

   "자진해서 절대 나서지 말아요. 자기 몸 귀한 줄 꼭 알고. 속시끄러운 포항에서 멀리 떨어지게 차라리 연평도 전방으로 보내 달라고 해요. 어쩌면 그게 군생활 편하게 하는 방법인지 몰라요."

   부하를 수족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지휘관한테 자식을 맡기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대에는 영달만을 좇기 위해 정권의 주구 노릇을 자청하는 버러지만도 못한 지휘관이 여전히 수두룩하다. 입대 전 머리 깎으러 오는 청년들을 볼 적마다 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살아서 돌아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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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드네프르 강 언덕의 전승기념탑. 2차대전 때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승을 기념하는 탑. 나는 그것이 기념탑인 줄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언덕에 서 있는 여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승기념탑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안내자의 설명이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전승이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어머니가 서서 기다리는 것, 그것만큼 전승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전승기념탐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워싱턴에 있는 전승기념탑이었습니다…전쟁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천박함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전승은 적군을 공격하여 진지를 탈환하거나 점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미국적 사고와 문화가 우리의 심성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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