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Jun 06. 2024

연극이 끝난 후

   자타 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가정 심리 상담의인 주인공이 정체 모를 협박범에게 자신의 커리어와 가정을 위협받게 되면서 추리소설 작가인 시어머니와 공조해 가족을 지키려는 이야기를 담은 생활밀착형 코믹 스릴러를 표방한 드라마 《우리, 집》에서 주인공인 노영원(김희선 분)이 즐겨 듣거나 주인공이 급격한 감정 변화를 보일 때 이를 극대화시키려는 장치로 등장하는 노래가 샤프가 부른 <연극이 끝난 후>이다. 드라마를 건성건성 봐 이해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데 <연극이 끝난 후>가 꼭 맞아떨어지는 선곡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여전히 출중한 김희선 미모는 안중에도 없이 귀를 쫑긋 집중해 듣는 <연극이 끝난 후>만이 수만 번 들어도 전혀 질리지 않고 오히려 들을수록 더 설레는 최애곡임을 재확인할 뿐이다.

   노래를 평하는 데 유익한 수사학을 가르치는 학원이나 책이 당장이라도 등록하고 구입할 게다. 열렬히 사랑하는 노래, 그 노래를 짓고 부른 가객의 가치를 논하려고 해도 달리는 표현력 때문에 절망하곤 한다. 그러니 미디어에 등장해 현란한 말주변을 구사하는 이른바 대중음악 평론가를 동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내뱉는 말이 실한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설령 알맹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미사여구를 남발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자랑 삼아 논하고 싶은 유혹이 있다. 샤프가 부른 <연극이 끝난 후>를 어떻게 논하면 좋을까. 한물 간 CF에 등장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광고 카피,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처럼 4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 매력이 전혀 퇴색되지 않는 명곡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곡 저변에 흐르는 재즈풍 선율을 어떻게 상찬할 것인가. 여성 리드 보컬의 낮고 무게있는 멜로디를 형언할 길이 있긴 한 걸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오래된 비평글 하나 겨우 건지긴 했다.


​   1980년의 대학가는 암울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과 신군부가 주도한 12. 12. 군사 쿠데타 그리고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까지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우리는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세 번 겪었다. 국민과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는 묵살됐고 영화, 섹스, 스포츠 뒤에 숨겨진 총과 칼에 의해 눈치를 보고 숨을 죽여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던 1980년 가을에 열린 제4회 대학가요제에서 한국 가요 역사를 빛낸 노래들이 탄생했다. 대상을 수상한 이범용과 한명훈의 '꿈의 대화'를 비롯해서 금상을 탄 뚜라미의 '해안선', 은상을 수상한 마그마의 '해야'와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는 대학가요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밀리지 않는 위치를 점하는 명곡들이다.

   연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건국대, 경기대생으로 구성된 혼성 7인조 그룹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는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노래들 중에서 가장 멋진 곡이다. 참신함, 실험성, 가사, 멜로디, 화성, 가창력까지 이 노래는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완성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대중음악의 미학을 완벽에 가깝게 소유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가요에선 자주 등장하지 않은 퍼커션 악기 봉고와 트윈 기타 시스템으로 퓨전 재즈와 월드뮤직까지도 포섭한 '연극이 끝나고 난 후'는 환호와 박수 갈채가 없는 연극 무대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쓸쓸함과 외로움을 자극한다.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 최명섭은 최호섭의 형으로 동생 최호섭의 대표곡 '세월이 가면'을 비롯해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과 김종서의 '주머니 속의 행복'의 노랫말은 그의 온화한 감성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언어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폐부를 서정적으로 묘사한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시어는 알토와 메조소프라노의 중간 음색을 가진 보컬리스트 조선희에 의해 파스텔 톤으로 담백하고 옅게 그려진다. 조선희는 가창력을 과시하기 위해 감정을 과잉하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한 음 한 음을 정확하게 호흡하며 노래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노래하는 디바가 있었다.

   김현철, 서영은을 비롯해서 < 위대한 탄생 >의 참가자 데이비드 오와 < 슈퍼스타 K > 출신의 딕펑스 등이 '연극이 끝난 후'를 부르고 영화 < 친구 >에도 등장한 이유는 분명하다. 34년 전에 발표된 노래지만 영화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생명력이 노쇠하지 않고 더욱 젊어지는 명곡이기 때문이다. (소승근, <소승근의 원 히트 원더스>, 23014.10. 전문)


​   뒷간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고, 막상 찾고 보니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 놓긴 했는데 왠지 뜬구름 잡는 식이라 막연하다. 글 중에 등장하는 '참신함, 실험성, 가사, 멜로디, 화성, 가창력'들은 '재즈답다'가 무엇이라고 선뜻 정의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어렴풋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라고 감히 자부하는 노래를 평하는 글이 어쨌든 있긴 하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QxQyMGZkD6w


작가의 이전글 스타워즈 시리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