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따위 폐지를 수거하러 다달이 점방을 찾는 '폐지 줍는 노인'을 깎새는 동정적으로 바라봤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관점이 부러움으로 확 바뀌었다. 휠체어가 아니면 운신 자체가 힘든 모친이 우선 겹쳐져서이겠지만 잊지 않고 매달 찾아오는 성실함, 깎새가 밀어도 힘에 부치는 손수레를 매일 끌 수 있는 운동 능력, 게다가 하루 평균 이동 거리 12.3㎞에 노동 시간은 11시간20분 일해 버는 일당이 고작 1만428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으로 최저임금의 10% 수준밖에 안 되지만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예사로 볼 계제가 아닌 것이다. 즐겨 읽는 한겨레신문 김은형 선임기자 칼럼 《너도 늙는다》 중에 마침 깎새 인식과 딱 들어맞는 내용을 발견하고는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성싶어 깎새는 무척 반가웠다.
얼마 전 노년의학 전문의인 정희원 교수(아산병원 노년내과)의 강의를 듣다가 크게 와 닿았던 말이 있다. 정 교수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비참한 노년 빈곤의 상징처럼 이해되곤 하는데 관점을 바꿔 많은 나이에도 이런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인지력과 운동 능력, 그리고 경제활동 능력까지 갖춘 모습을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빈곤의 현실을 가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노 키즈 존'이 가고 '노 시니어 존'이 왔다>, 2024.06.13 에서)
노인은 항상 점방 문을 몆 번 두드려 자기가 왔음을 우선 알린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깎새가 문을 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문을 빼꼼 열어 겸연쩍어하는 목소리로 "실례합니다"를 연발한다. 깎새가 아는 척을 하면 머리에 쓴 모자를 벗고 연신 조아린다. 그 모습은 흡사 초기 산업사회 시절 자본가 앞에서 빵모자를 벗고서 쩔쩔 매는 노동자를 그린 삽화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요즘은 되레 역동적으로 여겨진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는 지지만 자기 선에서 할 도리는 다한다는 결연함이 겸허로 발현된다는 점에서 노인은 유능한 현역으로 너끈하다.
점방 한 켠에 그간 쌓아둔 신문 꾸러미를 모두 수거하고 나면 노인은 다시 모자를 벗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손수레를 끌고 제 갈 길 간다. 그 견결한 뒷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깎새는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