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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22. 2024

뒈졌나 안 뒈졌나 보러 왔지?

   엽기적이라고 하면 하는 수 없지만, 임종 때 남긴 말이나 묘비명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 봤던 것 중에 알프레트 시닛케(1934~1998)라는 작곡가의 묘비명이 제법 인상깊다. 다른 작곡가의 곡을 인용하거나 패러디해서 현재와 과거의 작곡 스타일을 혼합한 곡을 만들기로 유명한 음악가였다지만 독특한 묘비명으로 명성을 날렸다. 음악 기호로 된 묘비명은 '페르마티 - 온쉼표 - 포르티시시모'로 그 뜻은 '오래 - 쉰다- 특히 아주 세게'이다. 가히 음악가다운 묘비명이다.

   하필 유언이나 묘비명에 관심이 많은지 궁금하다면 고故 최일남 선생 수필 한 대목을 대답으로 대신하겠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착한 말을 한다(人之將死 其言也善)."

   흔히 듣는 증자 말씀인데, 노나라 세도가인 맹경자孟敬子가 앓아 누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일러준 덕담이다. 이 말은 그러나 단독으로 구실하기 어렵다. '새가 장차 죽으려면 그 울음 소리 슬프다(鳥之將死 其鳴也哀)'는 글귀의 대구對句로 읽어야 뜻이 더욱 명료하다. 새가 그러하듯, 사람도 이승을 하직할 무렵엔 좋은 소리를 하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무척 아름답게 표현한 셈이다.

   대강 그런 것 같다. 죽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진짜로 마음을 비우는 모양이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는 마당에 새삼 아둥바둥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아는지라, 말이 선해질밖에 없을 것이다. 하기야 '이대로 죽기는 너무 억울하다'는, 한 맺힌 소리 또한 있을 터이다. 옛날로 치면 '애비의 원수를 꼭 갚아 달라'는 마지막 유언이 있을 법한데, 그런 모습을 역사극이나 군담소설軍談小說에서 가끔 목격한다. 할 말 다하고 나서야 고개를 뚝 꺾는 장면을 볼 때마다, 때아닌 웃음이 나온다. 지나치게 연극적인 죽음의 덧없음을 번번이 확인한다. (최일남, 『정직한 사람에게 꽃다발은 없어도』, 동아출판사, 1993, 92~93쪽)


   유언과는 달리 묘비명은 죽은 사람에 대한 경력이나 그 일생을 상징하는 말 따위를 묘비에 새긴 글을 일컫는다. 고인을 잘 아는 남이 그를 기려 남기곤 하지만 서양은 고인이 생전에 묘비명을 미리 남기기도 한다. 죽어서까지 생전의 명성을 이어가 세인의 입길에 계속 오르내리려는 일환이라면 묘비명 원래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수작질이겠지만 알프레트 시닛케처럼 음악 기호 따위로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묘비명이야말로 기발한 촌철살인 그 자체라서 보고 배울 만하다. 

   지금 사는 모습이 비록 드러내고 과시할 만한 게 못 된다 할지라도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인생을 명쾌하고 깔끔하게 정리했음 하는 바람이 희한한 유언, 묘비명을 수집하는 저의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수필에는 위인들이 임종 때 남긴 의미심장한 말들이 나온다. 그 중 일부다. 


   브람스는 포도주 한 잔을 맛있게 비운 후 읊조렸다.

   "음. 기막힌 이 맛."

   조르주 상드는 외쳤다.

   "아, 죽음! 죽음!"

   H G 웰즈는 친구들을 내보내려고 애썼다.

   "죽기 바쁘니 어쩌겠나. 나가 주게." 

   누가 그들의 최후만을 쫓아다니며 확인했겠는가. 후세 사람들의 주워 모은 얘기로는 그러려니와, 한국인이라고 이만 못하랴. 

   이를테면 월남 이상재 선생의 경우를 보자. 

   한 시대의 거인으로, 일제 치하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을 훈도하는 선생의 운명 전날이었다. 당시의 YMCA 총무 구자옥과 시인 변영로가 와병중인 월남을 재동 댁으로 찾아갔다. 월남은 제자벌인 두 청년을 혼몽한 시선으로 겨우 알아보고는 대뜸 말했다. 

   "이놈의 자식들, 너 나 뒈졌나 안 뒈졌나를 보러 왔지?"(이것은 월남이 말한 그대로이다.)

   그런 다음 벽을 향해 돌아눕는데, 눈물이 흘러 두 볼을 적셨다.(김을한 편저 『이상재 일대기』) 

   워낙 촌철살인의 해학이 기발했던 월남은, 80평생의 생애를 마감하는 찰나 가슴 속에 얽히고 서린 감회와 유한을 평소의 풍자에 실어 던진 것이다. 나라의 희망은 청년들에게 달렸다고 주장한 나머지, 항상 '청년노인'을 자처하던 사람답게 행동했을지언정 결별의 눈물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위의 책 9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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