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짜리 컴포즈커피가 입맛에 맞는다는 깎새 기호를 아는 쥐띠 갑장 손님이 며칠 전 자기는 아이스커피를, 깎새 주려고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입장했다. 무더워지면 아이스커피를 곧잘 마시는데도 따뜻한 커피만 좋아하는 줄 알고 사왔다는 손님 호의에다 대고 당신은 아이스인데 나는 쪄 죽으란 말이냐는 적반하장은 깎새 기질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갑장 손님은 약간만 다듬어 달라고 늘 주문한다. 깎는 재미란 게 바리캉으로 스윽 밀어 웃자란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지는 쾌도난마가 진수이지만 갑장 손님을 대할 적엔 그런 재미일랑 호주머니 속에 잠시 접어 둬야 한다. 대신 깎새 점방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손님과 노가리 까는 재미로 갈음해야 작업하는 데 그나마 용이하다.
며칠 전에도 이런저런 쓰잘데없는 잡담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자기는 집 안에 처박혀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 무조건 밖으로 나다녀야 직성이 풀린대서 깎새가 반박하듯 끼어들었다.
- 소싯적에 놀 만큼 놀아서 그런가 요새는 나가 놀아도 별 흥이 안 납디다. 차라리 쉬는 날 집구석에 틀어박혀 캔맥주나 까면서 세월아 네월아 퍼질러 있는 게 속 편하지.
정말 그렇다. 반백년 사는 동안 은근히 싸돌아다니면서 잘 놀았다. 남들 동경해 마지않는 제주도만 20대 때 이미 세 번씩이나 일주했다. 해가 지는 성산 일출봉 장관을 바라보며 민박집 평상 위에서 퍼마시던 소주맛 만큼 기막히다면 다시 제주도를 찾겠지만 근자에 제주도 분위기로 봐서는 기대 난망이라 썩 안 가고 싶다.
지리산은 또 어떻고. 대학 시절 통틀어 천왕봉 찍고 쌍계사 계곡에서 막걸리 퍼마시다가 정신머리 가출한 흑역사가 역시 세 번씩이나 되고 군생활 내내 강원도 동북 산악을 제 집 앞마당 뛰놀듯 돌아댕겼는데 명산 유람이 더 무슨 소용이람. 하여 놀 만큼 논 셈이다.
돈? 철 모르던 시절 헛된 꿈에 부풀어 안 해도 될 짓을 저질러 제 것도 모자라 부모 곳간까지 털어 날려 버렸으니 돈이라면 진절머리가 날 만하다. 그저 가족들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벌고 번 만큼 쓰면서 안분지족하련다. 하여 돈 잘 번다고 떵떵거리는 말종은 부럽기는커녕 같잖다.
사람이 퇴영적으로 변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뒷방 늙은이 신세를 자청한 건 아니다. 으리으리하고 삐까번쩍한 걸 부담스러워 멀리하고 범용하되 그 속에 담긴 담백한 가치 한 스푼 건져 그 몇 배를 부풀려 행복해하는 가성비 갑 미니멀리즘에 눈을 떴다는 식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삼고 싶다.
- 쉬는 날 마누라 회사 가고 딸애들 학교 다 간 집구석에 틀어박혀 사 놓은 캔맥주 까서 명란 서너 모타리 구워다 안주 삼아 깨작거리면 이른바 소박한 행복 완성입니다. 선생님이 건네준 이 커피처럼 뜬금없는 호의를 받았을 때 드는 작은 감동은 덤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