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Jun 27. 2024

장마 지면 떠오르는 글

   장마가 지면 떠오르는 글이 있다. 장마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글임에도 하필 장마 질 때 떠오르냐 묻는다면 대답이 궁색하다. 그저 재작년 장마 질 무렵 그 글을 발견해서라고밖에는.

   아흔을 넘긴 수필가는 어릴 적 소녀 감수성으로 무장해 단아하고 정갈한 문체,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로 향연을 펼쳤다. 2022년 7월 초 장마가 질 무렵 깎새가 열나게 읽던 건 『녹색평론』171호(2020년 3~4월)였다. 거기에는 1929년에 태어난 정원정 수필가가 기고한 「내 인생의 책(13)-희망과 위안으로 나를 여물게 해준」이란 글이 있었다. 표제처럼 희망과 위안으로 필자의 인생을 여물게 해준 책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마치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듯 정겨웠다. 

   기고한 글엔 특이하게도 책읽기를 좋아하는 필자가 나이가 들면서 눈도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눈에 인격을 부여해 자신에게 시망스레 푸념을 쏟아 놓는 엉뚱한 상상을 짧은 수필 형식으로 표현한 글 속의 글이 들어있었는데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봤던  「조침문弔針文」을 연상케 했다. 일찍이 문벌좋은 집으로 출가했다가 슬하에 자녀도 없이 과부가 된 윤씨가 오로지 바느질을 낙으로 삼고 있는데 하루는 시삼촌에게서 얻은 마지막 바늘이 부러지자 그 섭섭한 심회를 누를 길이 없어 바늘을 의인화해 제문 형식으로 쓴 고전수필 말이다.

   장마 지면 점방에 혼자 멀뚱멀뚱 넋놓고 있는 날이 잦다. 어쩌면 점방 안 바리캉이니 가위 따위 손때 묻은 기구가 깎새 보고 시망스레 푸념을 늘어놓을지 모를 일이다. 점방에서 손 떼기 전까지는 동고동락할 동지들이 내는 찜부럭은 차라리 앙증맞을 게다. 문득 그것들이 그저 무기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은 노 수필가 글에 흠뻑 매료되어서겠다. 혼자 읽고 묻어두기 아까워 새삼 꺼낸다.


   나의 넋두리올시다.

   주인님! 이제쯤, 나를 간간이 쉬게 하면 안되나요? 평생 80년 동안 어지간히 부려 썼으면 휴가도 내주셔야지요. 모든 게 시간이 가면 낡아지는데 나라고 해서 항상 청춘인 줄 아십니까? 내 의견도 좀 들어보세요. 날이면 날마다 그 작은 활자로만 가득한 신문을 읽게 하지를 않나, 그보다는 활자는 크지만, 아무렴은 내키는 대로 책을 보게 하십니까? 너무 나를 부리는 것 아닌가요? 저도 이제는 피곤하답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지요.

   아침이면 주인님 나이답게 명상도 하고, 저녁이면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 잠들면 좋을 것을 침대 위에 맨날 책뿐이니 그게 뭡니까? 그것은 그렇다 치고 밤이 되면 요즘에는 컴퓨터의 글씨도 잘 안 보이는데 더듬어 쳐다보고 있는 주인님의 모습은 궁상스레 보입니다요. 이제 하루 중 오전에만 나를 부리시고 오후에는 우아하게 쉬게 해주시면 안됩니까? 어질고 지혜로우시다면 80년 동안 저를 큰 머슴처럼 부리셨으니 늦게라도 보은 좀 해보세요. 제가 주인 당신을 위해 일평생 기여한 것, 속셈이나 해보셨나요? 세상은 모든 것 경제적으로 계산하지만 저는 그런 짓은 안합니다.

   저는 주인과 뗄 수 없는 관계로 단 한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었지요. 세상 구경 다 시켜드릴 때마다 당신이 즐거우면 저도 행복했습니다. 함께 울고 웃고 지냈지요. 지금은 세월이 많이 가고 보니 나도 당신처럼 노쇠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름 모를 눈물이 때 없이 흐릅니다. 젊었을 때야 슬퍼도 울고 기뻐도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이유 없이 눈물이 수시로 흐르니 당신께 미안하지만 어디 제 탓입니까. 풀독이 쳐들어온 걸 주인님이 손 빠르게 퇴치를 안한 탓 아닙니까? 저는 손도 없고 발도 없으니 혼자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지요. 지난 일은 할 수 없지만 이제라도 내 원을 귀담아들어 주세요.

   주인님! 오늘은 마른장마가 주춤해서일까요. 맑은 하늘엔 흰 구름이 여유롭습니다. 내가 이런 풍경 전달해드릴 때면 당신은 무척 좋아하셨지요. 당신이 스무 살 무렵, 그 뒤에도, 타지를 내왕하면서 열차 안에서 창 너머 멀리 보이던 들녘의 미루나무들, 산기슭에 서 있던 소나물들의 형태가 참 멋스러워서 사람 모습에 빗대어 끝없이 상상을 폈었지요. 멀리 보이는 풍경이 근경보다 더 그윽이 더 아름다워 보이지요. 저와 함께 즐겨 바라보던 풍경들 기억하십니까? 멀리 보이는 먼산주름들은 언제 봐도 감동스럽지요.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보았던 너른 들녘 너머, 이내 낀 산 밑 초가집들, 저녁밥 짓는 연기 가득한 마을 풍경, 여름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 어느 날 비 갠 뒤 산등성이에 걸려 있는 목화솜 펴놓은 것 같은 삿갓구름, 또 살이 에이게 추운 겨울밤에 사느랗게 마당 구석 눈 위에 그려졌던 나목들의 그림자, 지금껏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서 당신의 마음을 때때로 씻겨드린 것 다 제 역할이었지요.

   이제 와서 공치사하는 게 아니오라 좀 쉬고 싶어서 엄살을 떠는 겁니다요. 이렇게 푸념하는 것 용서하세요. 제가 가끔 해찰할 때 지정머리 없다고 하셨지만 저는 한 번도 주인 곁을 떠나 본 적은 없었지요.

   지금 당신은 내게 이렇게 나무라실 것 같네요.

   "이제껏 가탈 없이 지내온 것 내가 순환을 잘 운전하도록 우주가 돌보아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유기적으로 잘 다스린 덕 아니겠느냐.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신의 큰 은총인 걸 왜 모르느냐.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욕망 중의 하나가 읽으려는 책을 너로 하여금 읽게 하는 건데 네가 그토록 찌그럭거리니 어쩌면 좋으냐. 너의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 너의 원대로 나도 조심을 하마. 긴 세월 수고한 것 진심으로 치하한다."

   그렇기도 하겠네요. 저도 끝끝내 책 속에서 귀한 것 길어 올리고 싶거든요. 앞으로도 어쩝니까. 정해진 운명은 거슬러 봐야 다시 그 자리인걸요. 아무튼 주인님 건강하시기만 기도하렵니다. 속속들이 몸의 운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울 엄마도 아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