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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치 혀
by
김대일
Aug 13. 2021
선승 료칸의 '말에 관한 계율'을 임의진 목사 겸 시인의 칼럼에서 처음 접했다.(「임의진의 시골편지」, 경향신문, 2021.08.12.)
수행자여! 세 치 혀를 항상 주의하라.
1. 말이 너무 많은 것
2. 이야기가 너무 긴 것
3.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
4. 제 집안이나 출신을 자랑하는 것
5. 남의 말 도중에 끼어드는 것
6. 쉽게 약속을 하는 것
7. 친구에게 선물을 주기도 전에 먼저 말로 설레발치는 것
8. 가난한 이에 선물하고, 그걸 남들에게 자랑삼아 떠드는 것
9.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것
10. 슬픈 사람 곁에서 웃고 노래하는 것
11. 친구가 숨기고픈 일을 폭로하는 것
12.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막 대하는 것
13. 마음에도 없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것
나열한 계율을 모두 주의할라치면 아예 입을 닫고 살거나 금욕주의자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혼자 투덜거린다. 고로 나는 절대 수행자가 될 수 없다.
료칸이 하이쿠(俳句)에 능했던 건 무소유와 고행에 철저했던 삶을 통해 말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5•7•5 17음으로 이루어진 단시, 즉 하이쿠로도 충분하니까.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지는 벚꽃
남은 벚꽃조차 머잖아 지는 숙명을 타고 났음이 개선장군 행렬 뒤에서 노예가 외쳤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연상시킨다. '너무 우쭐대지 마라.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를 17음에 담아냈으니 하이쿠가 순간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그건 그렇고, 넘사벽 계율 중에서도 7번, 13번은 특히 더 벅차다. 불순한 의도가 아닌데도 결과적으로 식언을 남발하는, 애써 변명하자면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야, 내 병폐를 적시한 듯해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다. 결국 세 치 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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