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고 해서 딸애들은 엄마와 충북 음성 외갓집을 다녀왔다. 막내 이모, 이모부와 합류해 근처 계곡에서 모처럼 바캉스를 즐기고 일요일 저녁 기차로 돌아왔던 것이다. 대합실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무수히 많은 여행객들과 그 여행객들이 끌고 다니는 캐리어를 봤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가고 오며 그들 캐리어 속에 무엇을 넣고 다닐지.
부산 돌아오기 전날 담근 김치와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싼 아이스 백을 얹은 캐리어를 끌고 식구들이 등장했다. 받아 들고 얼른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에 빨리 가야겠다는 일념뿐이어서 그때 물어본다는 걸 깜빡하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 캐리어 속에 뭐가 들었어?
키가 허리께까지 오는 여행용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여행객은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오래 머물 작정을 했기에 저토록 바리바리 보따리를 싸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걸까. 여행이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라고 비유한다면, 탈출이라고 하니 자유를 찾아 탈옥을 감행하는 빠삐용도 덩달아 떠올려 보면, 채비 단출해야 그 해방감이랄지 행복감이 더 충만할 터인데 코뚜레 꿰진 황소 짐바리 끌고 댕기데끼 깍짓동처럼 퉁퉁한 이물을 달고 다니는 게 여행의 묘미쯤으로 여긴다면 객기로밖엔 안 보인다. 더 신랄하게 빈정거리자면 여행을 빙자한 허영기 대방출, 물질주의적 과시욕으로 비춰져 같잖거나.
필립 한든이라는 사람이 쓴 『소박한 여행』(김철호 옮김, 강, 2004)에는 하이쿠의 명인이자 유랑 선승인 마쓰오 바쇼의 여행 가방에 담겨 있는 것들을 소개했다.
- 추운 밤에 대비한 창호지로 만든 옷, 우비, 문방사우 등. 차마 두고 오지 못한 벗들의 이별 선물들과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은 불안과 고뇌.
느긋하게 여행을 떠나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주제에 여행용 캐리어를 두고 트집을 잡는 꼴이 볼썽사납지만 보이는 것 말고 여행 가방에 채워야 할 게 무엇인지 곰곰이 궁리하며 즐기는 여행도 뜻깊지 않을까 싶어서 객쩍게 씨불거렸다. 구순이 다 되어 가는 장모가 떠나는 마누라한테 당부를 했다는데 그게 사실이면 무척 송구하다.
- 다음엔 김서방도 꼭 같이 와. 나 죽기 전에 얼굴은 함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