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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01. 2024

캐리어 단상

   방학이고 해서 딸애들은 엄마와 충북 음성 외갓집을 다녀왔다. 막내 이모, 이모부와 합류해 근처 계곡에서 모처럼 바캉스를 즐기고 일요일 저녁 기차로 돌아왔던 것이다. 대합실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무수히 많은 여행객들과 그 여행객들이 끌고 다니는 캐리어를 봤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가고 오며 그들 캐리어 속에 무엇을 넣고 다닐지. 

   부산 돌아오기 전날 담근 김치와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싼 아이스 백을 얹은 캐리어를 끌고 식구들이 등장했다. 받아 들고 얼른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에 빨리 가야겠다는 일념뿐이어서 그때 물어본다는 걸 깜빡하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 캐리어 속에 뭐가 들었어? 

   키가 허리께까지 오는 여행용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여행객은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오래 머물 작정을 했기에 저토록 바리바리 보따리를 싸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걸까. 여행이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라고 비유한다면, 탈출이라고 하니 자유를 찾아 탈옥을 감행하는 빠삐용도 덩달아 떠올려 보면, 채비 단출해야 그 해방감이랄지 행복감이 더 충만할 터인데 코뚜레 꿰진 황소 짐바리 끌고 댕기데끼 깍짓동처럼 퉁퉁한 이물을 달고 다니는 게 여행의 묘미쯤으로 여긴다면 객기로밖엔 안 보인다. 더 신랄하게 빈정거리자면 여행을 빙자한 허영기 대방출, 물질주의적 과시욕으로 비춰져 같잖거나. 

   필립 한든이라는 사람이 쓴 『소박한 여행』(김철호 옮김, 강, 2004)에는 하이쿠의 명인이자 유랑 선승인 마쓰오 바쇼의 여행 가방에 담겨 있는 것들을 소개했다.

   - 추운 밤에 대비한 창호지로 만든 옷, 우비, 문방사우 등. 차마 두고 오지 못한 벗들의 이별 선물들과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은 불안과 고뇌.

   느긋하게 여행을 떠나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주제에 여행용 캐리어를 두고 트집을 잡는 꼴이 볼썽사납지만 보이는 것 말고 여행 가방에 채워야 할 게 무엇인지 곰곰이 궁리하며 즐기는 여행도 뜻깊지 않을까 싶어서 객쩍게 씨불거렸다. 구순이 다 되어 가는 장모가 떠나는 마누라한테 당부를 했다는데 그게 사실이면 무척 송구하다.

   - 다음엔 김서방도 꼭 같이 와. 나 죽기 전에 얼굴은 함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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