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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03. 2024

스트레스엔 잠이 최고

   얌전한 쥐밖에 없는 생쥐 우리에 사나운 쥐를 침입시켰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인 얌전한 생쥐는 사나운 쥐가 나타난 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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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 시작 뒤 한 시간 정도 쫓겨다닌 생쥐는 침입자가 사라진 후 곧 잠들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잤다. 연구진은 사나운 침입자가 정말 스트레스를 유발했는지 검증했다. 사나운 쥐에게 쫓겨다닌 정도의 거리를 운동 삼아 달리게 한 경우, 그리고 온순해서 서로 쫓아다닐 필요가 없는 생쥐를 우리에 넣어준 경우를 비교해 살폈다. 이럴 때는 생쥐가 잠을 일찍 자지 않았다. 생쥐는 정말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잔 것으로 분석됐다. (최한경 뇌과학전공 교수, <신경과학 저널 클럽-오늘 속상했다면…자꾸 되뇌지 말자, 대신 일찍 잠자리에 들자>, 경향신문, 2022.07.1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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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일찍 자는 게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로 인한 나쁜 감정을 떨쳐버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장마가 지나가자 폭염이 기승이라 날씨부터가 스트레스다. 새벽 출근길, 점방이 가까워지면 알맞은 주차 구역을 찾느라 진땀깨나 뺀다. 하지만 도로 옆으로 난 공용주차장은 온통 땡볕이다. 그 와중에 가로수로 조성한 아름드리 은행나무 그늘 아래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임엔 분명하지만 선수 치는 차가 늘 주차 중이다. 간혹 주차비 징수하는 노인이 아침 출근하기 전에 내빼기도 해 혹시나 차가 빠질까 예의주시하느라 아침부터 긴장 상태다.

   여름일수록 손님 대응에 유의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 행세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시비를 건다는 식으로 별거 아닌 일로 언성이 높아지는 불상사가 요즘 부쩍 잦아서이다. 일단 대거리가 벌어지면 감정은 탈탈 털리기 일쑤고 그로 인한 여파가 의외로 오래 간다. 누가 빌미를 제공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빌어먹을 각축전에서 누가 승자이냐도 썩 중요하지 않다. 누구랄 것 없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순간부터 모두가 스트레스란 늪에 빠져 버린 조난자 신세이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도 올해만큼 더웠지만 올 여름처럼 퇴근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무슨 이유일지 곰곰이 돌이켜보니 간단했다. 작년엔 주로 전철을 타고 다녔으니까. 승용차를 몰고 광안대교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치라면 여름 휴가철 대표적인 휴양지라는 해운대 주변 교통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쯤은 염두에 둬야 한다. 퇴근길 광안대교 위에서 해운대로 빠지는 톨게이트를 향해 꼬리를 길게 물고 정체한 차량 행렬에 끼어 하고많은 데 중에 왜 하필 해운대냐고 애먼 불특정다수 휴양객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리는 꼬락서니가 한심하면서도 이러다간 길에다 있는 기름 없는 시간 다 뿌리며 올 여름을 날 성싶어 분노까지 치민다.  

   다혈질인 깎새보다 더 불뚝성질인 마누라이지만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은 야누스적이다. 마음에 안 들면 일단 소리부터 버럭 지르고 보는 건 부부가 어슷비슷하지만 단념이 빠른 그녀는 태세 전환도 빨라 뒤끝 없이 쿨해지는 품이 마치 손을 대지 않고도 휙휙 가면을 바꾸는 중국 변검배우를 무척 닮았다. 달관이라도 한듯 "열 내본들 무슨 소용이냐"고 선언한 뒤 계속 씩씩대는 깎새를 오히려 달래는 마누라를 볼 적마다 그런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 마누라가 초지일관하는 습관이 다름 아닌 잠이다. 유난히 잠이 많은 아줌마는 잠들기 전과 한잠 푹 자고 난 뒤가 천양지차다. 지난밤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을 적엔 소크라테스 악처 크산티베가 따로없다가도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현모양처로 돌변한다. 앵앵거리는 콧소리로 '여봉'하고 불러서 소름이 돋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 말 다 한 거다. 한 이불 덮고 잔 지가 사반세기이지만 그런 돌변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아주 가끔씩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신문 기사 속에 등장하는 생쥐처럼 마누라 역시 잠으로 스트레스를 다룸으로써 매일매일 갱신할 힘을 얻는 게 맞는다면 잠보 마누라를 따라 잠자는 시간을 더 늘려보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게다. 여름이라 더 기승을 부리는 계절 스트레스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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