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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05. 2024

꿀벌 수난시대

   헬스장 탈의실로 막 들어가려는데 젊은 남자가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나오면서 제 딴에는 경고랍시고 "말벌이 날아다녀요!" 소리쳤으니까. 날아다니는 게 있긴 했다. 근데 자세히 살펴 보니 무지막지하게 생긴 말벌하고는 거리가 먼 비행체였다. 차라리 살이 통통 찐 꿀벌에 흡사하다고나 할까. 

   반응이 극적이었는지 급보를 전해 들은 헬스장 주인이 놀란 면상을 하고 달려와서는 "말벌이 나타났다는데" 걱정스럽게 탈의실을 살피더니 주변에 널부러져 있던 타월 한 장 주워 들어 조자룡 헌 창 쓰듯 목표물을 향해 곧장 집어던졌다.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헬스장 주인과 깎새는 동시에 미확인 비행체를 확인했다. 꿀벌이었다. 

   "두 마리라던데" 탈의실을 샅샅이 뒤지던 헬스장 주인은 마침내 다른 꿀벌 일당을 찾아내고는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려 했다. 호전적인 헬스장 주인이 영 마뜩잖았던 깎새가 말리듯 씩둑거렸다. "요새 꿀벌 실종됐다고 난린데." 

   요 몇 년 사이 가장 충격적이면서 두려웠던 시사時事는 '꿀벌 실종'이다.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바로 2022년 1~2월 사이 전국적으로 77억 마리 이상 꿀벌이 폐사했다고 하니 절멸이라고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전국 9개 도 대부분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남부 지역에서 북쪽으로 확산 중이라고 했는데 그 뒤로 확산세가 진정됐는지 궁금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작물 중 71%가 꿀벌을 매개로 수분受粉(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한다. 꿀벌이 채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지구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꿀벌응애(기생충), 등검은말벌 따위 해충의 증가가 그 중 하나다. 직접적인 이유일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은 성싶다. 해충은 과거에도 넘쳐났지만 지금처럼 절멸을 걱정할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보다 이상 기후가 더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9~10월 발생한 저온현상으로 꿀벌의 발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11~12월에 이어진 고온으로 밀원수(꿀벌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나무)의 꽃이 이른 시기에 피면서 꿀벌이 크게 줄어든 것"이라는 당시 농식품부 관계자의 분석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밀원수 자체가 점차 줄어듦으로써 꿀벌 생존을 더욱 위협한다고 하니 제아무리 영리한 꿀벌이라도 척박해진 환경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게 분명하다. 

   2008년 환경 단체 '어스 워치Earth Watch'는 지구에서 절대로 사라지면 안 될 다섯 가지 생물 중 가장 1등으로 꿀벌을 뽑았다. 꿀벌이 없으면 인류의 식량도 사라지기에 대체 불가능한 종으로 꼽힌 것이다.

   생전에 아인슈타인이 그런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나머지 불청객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헬스장 주인을 향해 깎새는 아인슈타인처럼 외치고 싶었다. 

   -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

   77억 마리 폐사에 애꿎은 두 마리가 더 얹어졌다.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멸종을 예감했다면 너무 나간 발상이었을까. 어쨌든 오금이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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