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

by 김대일

내 생일은 음력 7월 초하루, 올해는 8월 둘째 일요일이었다. 알바 마치고 귀가하니 소고기 넣고 한소끔 끓인 미역국을 내놓는 마누라가 봉투도 덩달아 내민다. 용돈을 생일 선물로 대신할 테니 그걸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란다. 약소하다는 뒷말이 껄쩍지근했지만.

생일밥 후다닥 해치운 뒤 방문 걸어 잠그고 봉투를 열었는데 애걔, 겨우 3만 원. 그래도 기분은 째진다. 3만 원으로 마누라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게 뭔지 즐거운 고민에 돌입했으니까.

'한창훈'으로 결정했고 알라딘 중고온라인에 접속했다. 뭐든 한 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빠지는 별난 버릇이 또 도졌다. 칼국수 집 겉절이김치에 넋이 나가 하루도 안 빠지고 거길 드나들었다고 얼마 전에 얘기한 거 기억나남? 이번에는 음식 대신 사람이다.

소설을 읽고 소설가한테 반하기는 처음이다. 소설이 가공의 산물이되 결코 작위적이지 않고 원초적이면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이 파닥거리는 물고기마냥 행간을 휘젓는다. 이런 글 쓴 이는 절대 가식적일 리 없다. 이미 「청춘가를 불러요」에서 홀딱 넘어갔는데 「홍합」으로 넉다운이 됐다. 당분간 이 양반 아니면 사는 재미가 없겠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 적힌 작가 이력은 다음과 같다.

1963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서 세상에 나왔다.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것과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일곱 살에 낚시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해녀였던 외할머니에게서 잠수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사십 전에는 기구할 거라는 사주팔자가 대략 들어맞는 삶을 살았다. 음악실 디제이, 트럭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이런저런 배의 선원, 건설현장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따위의 이력을 얻은 다음에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뒤로는 한국작가회의 관련 일을 하고 대학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수시로 거문도를 드나들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두바이', '홍콩-로테르담' 두 번의 대양 항해를 하며 근해에서만 머물렀던 답답증을 풀기도 했다. 특히 인도양과 수에즈운하 거쳐 지중해를 통과한 다음 북대서양으로 올라갔던 두번째 항해를 떠올리며 지금도 서쪽으로 눈길을 주곤 한다. 4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원고 쓰고, 이웃과 뒤섞이고,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고 있다.

5권 25,800원어치 중고책이 엊그제 당도했다. 물론 '한창훈' 책이 다다. 내 이름이 수신인인 택배를 보고도 약속대로 마누라는 따따부따 따지지 않았고 득의만면한 나는 한번에 몰아서 읽을지 (책이라 아끼다 똥 될 일은 없을 테니) 찔끔찔끔 읽을지 고민에 빠졌다. 이 순간만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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