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황정민이 '진짜' 납치됐다는 설정인 영화 <인질>에 관한 리뷰를 읽다가 갸우뚱했다. 평가의 후박이야 영화를 본 관객(여기서는 기자) 마음이긴 한데 동일한 사안에 대한 엇갈린 시각이 참 별쭝나면서도 한 길 속을 모른다는 사람 마음이 새삼 오묘하다고 느꼈다.
영화 <인질>은 진짜 같은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주인공 황정민을 제외한 배역 거의 전부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로 채웠다.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한데 그들이 실제를 방불케 하는 연기력을 보이느냐 마느냐에 영화의 성패가 좌우됨은 분명한 듯싶다. 내가 본 두 신문 리뷰는 여기서 확연하게 갈린다.
-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감정 조율하기 어려웠던 황정민의 고민을 덜어준 건 다른 배우들과의 시너지다. 그 덕에 영화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에너지를 분출한다.(한겨레)
- 조연들의 연기가 황정민이 황정민을 연기하는 설정을 받쳐주지만 인질범들 간 캐릭터 안배가 진부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일심동체인 줄 알았던 이들(인질범들) 간에 미묘한 역학관계가 존재하고, 그 긴장이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어디선가 본 듯한 흐름이다(한마디로 식상하다).(경향)
두 신문은 영화의 액션 장면에 대해서도 반응이 사뭇 다르다.
- 후반부 들어 액션 장면도 나오는데, 이 또한 실제에 가깝다. 자동차 추격 장면은 감독 말마따나 "옆 동네에서 실제 교통사고를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한겨레)
- 스펙터클은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뒤에 따라오는 내용이 신경 쓴 흔적에 대한 부연 설명이지만 왠지 심드렁하다)(경향)
두 신문 중 어떤 리뷰에 내가 기울어질지는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갈릴 테고 같은 영화를 봤는데도 두 신문사 기자의 평가가 극과 극까지는 아니더라도 온도차가 분명 큰 이유가 뭔지가 궁금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프로에도 나왔던 뇌과학자 장동선은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장동선 지음/염정용 옮김, 아르테)라는 책에서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왜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들 뇌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세상을 인지한다. 뇌는 감각기관들이 제공하는 일부분의 정보들을 이미 저장해 놓은 경험들과 결합한다. 일단 습득된 지식이 있어야 빨간색은 빨간색이 된다. 딸기 맛을 알고 있어야만 어떤 아이스크림이 딸기 맛이 나는지 판정할 수 있다. 우리들 모두는 살아가는 동안 완전히 서로 다른 경험들을 쌓고, 이것들을 뇌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연결시킨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정확히 똑같은 것을 맛보고,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을 배운다.
발췌문에 순전히 기대어 짐작해 본다면, 두 기자는 <인질>과 비슷한 류의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이나 정보가 내재된(각자의 편견으로 굳어진) 상태에서 <인질>을 봤기 때문에 상이한 리뷰를 내놓은 게 아닐까 제멋대로 추측한다. 즉 비슷한 류의 영화에서 각인된 '인상적'이거나 '몰개성적'이라는 잣대가 <인질>로 촉발되었다는…이게 아닌데.
기자가 영화 리뷰를 쓸 정도의 짬밥이면 덕후 수준의 내공이 쌓였을 테니 사사로운 감정이나 경험 따위로 감상평을 써갈기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뇌과학 운운하면서 리뷰의 시각차를 논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다. 고로 지금까지 내가 적은 건 다 헛소리다. 원래는 두 기사를 빌미 삼아 편견이나 확증편향에 대해 씨부릴 요량이었는데 여의치 않자 말꼬리를 붙잡고 여기까지 왔다. 쓴 게 아깝다는 본전 생각에 횡설수설했을 뿐이다. 아, 글 쓰는 게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왕왕 있는데 오늘이다. 편견, 편향에 대해서는 좀더 정리해 다음 기회에 꼭 써볼까 한다. 그건 그렇고 연기 좀 한다는 <인질>의 인질범들이 궁금하다. 황정민과 이루는 앙상블이 시너지를 내는지 아니면 진부한 느낌을 주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