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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8시간전

쉬우면서 간단한 처세술

   가끔 드나드는 손님인데 짜증을 낸다. 바리캉이 머리카락을 자꾸 씹는다고. 그러면서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덧붙인다. 다른 데는 안 그러는데 여기만 '유독' 씹히냐고. 그 낱말은 이럴 때 써야 담은 뜻이 더 부각되는, 올 여름 '유독' 손님과 마찰이 잦았던 까닭에 깎새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걸 마스크로 겨우 가린 채 그런 손님 투정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길로 바리캉을 바꿨다. 세 개를 돌려가며 쓰는 바리캉 중 가장 애착이면서 잘 나가는 에이스로. 하지만 그 손님은 도리질을 멈추지 않고 또 발끈했다.

   - 바리캉을 너무 빨리 돌리는 거 아뇨? 계속 씹히잖아.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래 가장 은은하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은 음색으로 대꾸하려는 깎새의 노력은 지난하면서도 가련했다.

   - 아닙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깎는 중입니다.

   손님 개성이 천태만상이듯 머리질도 제각각이다. 거짓말 좀 보태 바리캉을 갖다 대기도 전에 서걱서걱 잘리는 질이 잘 든 머리카락이 있는 반면 암만 용을 써도 자꾸 삐꾸가 나는 것도 많다. 차라리 철사를 절단하는 게 낫지. 그런 건 반드러움하고는 담을 아예 쌓은 듯 기가 세고 건조무미한 숱이다. 그러니 에이스 할애비를 들이댄들 바리캉은 씹히기 마련이라. 호불호를 따지자면, 깎새 점방 손님들로 한정하자면 3:7쯤? 최소한 깎새 점방을 드나드는 손님들 중에 깎기 편한 머리카락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좀 희귀한 편이다. 그런 고로 연장 나무라는 짓은 까딱하면 누워서 침 뱉기일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할 게다.

   하지만 깎새는 '바리캉 오작동이 당신 머리카락 성질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수?'라고 되묻지 않았고 앞으로도 손님에게 그런 무모하고도 경우에 없는 짓은 추호도 저지르지 않기로 강다짐했다. 그저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를 내 할머니 살아 생전에 정화수 떠놓고 연신 '나무관세음보살' 읊듯 속으로 되뇌면서 제발 가늘고 길게 장사를 이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기실 바리캉을 천천히 놀리면 머리카락은 잘 잘린다. 뒤에 놓인 대기석에 앉은 손님 서너 명이 약속이나 한듯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한 손님 당 5분이면 딱인 커트 시간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는 심정으로 한 올 한 올 정성을 들여 깎다 보니 엿가락 늘어나듯 지상가상없이 늘어진다 해도 어쩌면 그게 가늘고 길게 장사하는 지름길일 게다. 이발의자에서 잠자코 머리를 맡기고 있던 손님이 느닷없이 쌍심지를 켜고 깎새더러 그 깜냥으로 무슨 돈을 벌어먹겠냐는 모욕을 듣지 않는 가장 쉬우면서 간단한 처세술.


   쉬우면 알기 쉽고 간단하면 따르기 쉬우며, 알기 쉬우면 친숙해지고 따르기 쉬우면 공적을 이루리라.

   (···) 

   쉽고 간단해서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니,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면 올바른 자리가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다.(주역 계사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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