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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Sep 05. 2024

환청

   요양병원에서 코에 호스를 달고 사는 모친은 휴무일 화요일마다 면회하러 오는 깎새한테 근래 들어 부쩍 심하게 엄부럭을 부린다. 같은 병실 옆 침대 할매가 몰래 건네주는 군것질거리를 입에 넣어 살살 녹혀 먹으니 목구멍으로 얼마든지 넘길 수 있는데 코에 호스는 왜 안 빼냐는 거며 그 잘난 연하기능검사는 왜 다시 안 받느냐고 성화인 것이다.

   아무개종합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X레이 동영상 화면을 보여줬다. 식도로 넘어가야 할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게 역력해 코에 호스를 다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명토를 박는 바람에 먹는 게 사는 낙인 노친네한테 천부당만부당인 소견이라면서 뻗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씹는 기능을 재활할 수만 있다면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 추이를 지켜보자는 여지를 남김으로써 그야말로 실낱같은 희망 고문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모친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이 재활치료를 겸하는데다 연하재활을 전문적으로 맡을 작업치료사도 상근해서 앞뒤 잴 거 없이 그길로 씹는 연습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음식물을 씹는 근육을 강화시키겠다면서 입과 목 주변을 마사지하는 데 중점을 두더니 삼킴 연습을 위해 플레인요거트를 넣어달라는 요청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코에 꽂은 호스에만 의지해 액체로 된 음식물과 물을 섭취하던 모친은 연습이긴 하나 직접 떠서 입에 넣어 삼키는 플레인요거트 덕에 그간의 갈증을 얼마간 풀었다. 허나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인지라 시도 때도 없이 군임석질하는 같은 병실 할매를지켜보면서 꿀떡꿀떡 잘만 삼키는 사람 병신 취급하는 병원 관계자가 원망스럽고 그걸 그냥 방조하는 아들내미가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틀 전 휴무일에 찾았을 때 이전과는 영 딴판인 또릿또릿한 발음으로 얼른 그 빌어먹을 연하검사를 다시 하자는 모친 채근에 부리나케 담당 작업치료사와 상담을 했지만 눈에 띄는 호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다만 재활 3개월이 지날 무렵 재검사를 받아봐서 변화 추이를 지켜볼 필요는 있다는 또 실낱같은 희망 고문에 요양병원 담당 주치의와 면담을 요청했다. 모친한테는 10월 중으로 검사를 예약하겠노라며 간신히 달랬고. 

   화요일 휴무일은 모친 면회를 중심으로 일정이 돌아간다. 면회가 끝난 뒤에라야 휴무다운 휴무를 즐기는 깎새라서 면회를 마친 귀갓길에 캔맥주와 안주 겸 끼닛거리를 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모친이 장기 입원에 들어가던 작년 12월 무렵이나 지금이나 푸짐하게 한 상 차림을 마련해 집에서 혼자 먹는 건 똑같지만, 이틀 전에도 해운대 장산역 주변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수제돈가스 점방 메뉴 중에서도 가장 즐기는 냉모밀에 생선가스를 산 것도 모자라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인 명란젓까지 근처 반찬가게에서 사다 식탁을 가득 채웠지만, 휴무라는 호사를 누릴 만치 음식이 입에 맞갖지 않으니 참 이상했다. 그날따라 사레가 들려 자꾸 기침을 하는 건 뭐며.

   모친은 이대로 배 곯다 죽게 냅두라고 어깃장을 놓는다. 형형한 두 눈은 원망기로 가득하고 내뱉는 악다구니 속엔 찌르면 선혈이 낭자할 비수가 셀 수 없이 박혀 있다. 감정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짐짓 태연하게 먹고 마시자니 이명처럼 웅웅거리는 환청에 흠칫한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이 후레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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