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왔다는 걸 확인받는 눈인사를 건네고선 도로 나가 다시 들어올 땐 한 움큼 커피사탕을 들고 나타난 양산 손님. 이발요금보다 기름값, 도로비가 더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줄 알면서도 매달 거의 같은 날 깎새 점방에 들러 아주 짧은 상고머리로 깎고 가는 그 손님을 깎새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머리 깎는 솜씨가 제 마음에 쏙 들어 먼 걸음 마다하고 찾아주는 손님이 고맙기는 해도 행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수라도 저질러 손님은 실망감으로 깎새는 낭패감으로 쑥쑥해진 분위기를 수습할 자신이 도무지 없어서다. 그렇다고 제 발로 찾아오는 손님한테 '당신 머리를 깎을 적마다 밀려드는 중압감 때문에 제 명에 못 살겠수다'라고 칭얼대기도 뭣하고.
자기 동네에 요금 싼 커트점을 검색해봤더랬다. 몇 군데 없지는 않아서 그 몇 군데를 가봤다고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영 개운치가 않더라나. 잘 깎고 못 깎는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이면서.
- 원장님한테 머리를 깎고 나면 대접받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니 양산에서 달려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올 여름, 치솟는 수은주와는 별개로 깎새도 끌탕을 앓았었다. 자른 머리를 도로 붙여 놓으라고 악다구니를 퍼붓던 개업 이래 사상 최고 빌런이 정점을 찍긴 했지만 그이 말고도 손님들과 끊이지 않던 불화는 심상찮았고 그 때문인지 낯선 손님, 구면인 손님 가릴 것 없이 점점 겁을 집어먹어 위축되기 십상이었다. 그런 깎새를 불쌍히 여겨 날린 접대용 멘트라고 해도 제법 시의적절했다. 깎새야말로 대접받는 느낌이었으니까.
혈압약을 장기 복용 중인 깎새는 냉탕을 즐기지 않아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냉온욕이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는 효능에 구미가 당기지만 쉽사리 체험하진 못한다. 점방이 목욕탕이라면, 자른 머리를 도로 갖다 붙여 놓으라는 둥 머리가 자꾸 씹히는 바리캉질로 무슨 장사를 하겠냐고 깎새를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냉혈한이 냉탕이고 한 움큼 커피사탕을 손에 쥐어 주며 대접받고 간다고 고마워하는 양산 손님이 온탕이라면 올 여름 냉온욕 효험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를 달리 치유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