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아들이 병약하고 늙은 아비를 커트점에 데리고 왔다. 아비는 싫댔지만 아들은 커트에 더해 고급 염색 주문을 고집했고 관철시켰다. 커트점 볼일을 다 보고 나서 그 아비를 대신해 병원에 가 약을 수령하기로 되어 있는지 보호자임을 확인시킬 가족관계증명원을 발급받자면 가까운 주민센터를 가야 했고, 그 전에 조촐하게 요기를 때울 겸 식당을 물색하던 아들이 불쑥 물었다. 옆 국수가게 어떠냐고. 즉답을 못했다. 같은 건물에 세 든 동업자이니 친하게 지내볼 요량으로 커트점을 막 개업할 무렵 국수와 김밥을 먹어봤지만 입맛에 영 안 맞았다. 이후로는 건물주 흉을 나불대지 않는 한 수다스러운 국수가게 여주인과는 그녀가 만든 음식으로 화제를 삼은 적이 없다. 의향을 물어본 아들이 다달이 잊지 않고 커트점을 찾아 주는 단골인 까닭에 먹을 만하다는 꾐에 넘어갔다가 입만 버렸다는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아서 아닌 걸 기다고 속일 순 없으니 "한 낀데요, 뭘"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국수가게 여자와는 딱 그 정도 사이다.
국수가게 문은 일주일 넘게 굳게 닫혀 있다. 한 건물에 세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커트점과 벽 하나를 두고 바로 이웃한 국수가게에 기척이 사라지자 드나드는 손님들로 커트점 문지방이 닳아도 건물 공기가 왠지 을씨년스럽다. 건물 뒷마당 국수가게 영역에 널린 빨래줄은 일주일이 넘도록 휑하다. 국수가게가 부산하다면 그 빨래줄엔 그녀가 입고 온 옷가지며 브래지어까지 늘 널려 있다. 여자가 그 빨래줄에 넌 옷가지며 브래지어는 그녀가 그 공간을 공고하게 점유 중이라는 사실을 표상하는 장치인 셈이다. 뒷마당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브래지어가 남우세스러워 아무도 없는데도 시선을 피하기 일쑤였지만 하루이틀사흘나흘··· 이골이 나면 은근히 그걸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야릇해하는 깎새다. 오늘은 무슨 색깔일지. 마누라한테 사실을 털어놨더니 국수가게 여자 나이며 얼굴, 몸매부터 물어본다. 취향이 아니라고 했더니 대뜸 "너, 변태지" 쏘아붙인다. 그럴지도 모르고.
어제 저녁 퇴근하면서 국수가게를 힐끔 쳐다보다가 '개인사정으로 쉽니다'라는 안내문을 발견했고 그 옆에 자그마한 글씨로 언제까지 쉬겠다는 기일을 적어놨다. 손을 아주 놓은 게 아님을 확인하자 안도감이 들었다. 동료애라 불러도 좋을 감정일까?
조만간 뒷마당 빨래줄에 그녀 브래지어가 다시 널릴 게다. 그러면 덜 우려낸 멸치 육수에 만 맛적은 국수를 내놓는 그녀를 볼 수 있을 테지. 그녀가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