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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Sep 15. 2024

시 읽는 일요일(170)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작년 2월 별세한 故 오탁번 선생은 한국어를 지키는 불침번이 되고 파수병이 되어야 한다는 생전 지론처럼 모국어 시어에 대한 헌신이 대단했다. 별일 아닌 걸 별일로 만드는 걸출한 매력이 해학적이고 토속적인 한국어에 올라타 정감이 아니 어릴 수 없다. 하여 명절 앞이면 선생 시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읽는 이가 쉽게 읽으면서도 마음의 파문이 심상찮은 공감을 자아내야 글답고 시답다. 

   행복한 명절 연휴 보내시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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