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모스라는 인류학자가 저서 『증여론』에서 '포틀래치'라는 의례를 소개했다. ‘포틀래치’란 ‘식사를 제공한다’, ‘소비한다’는 뜻인 북서부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 의례다. 출생, 성년식, 결혼식, 장례식 같은 통과의례나 추장 취임식, 집들이 같은 의식을 통해 손님들에게 온갖 음식과 선물을 잔뜩 안기는 '포틀래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게 아니고 누군가에게 자기 재물을 베풀어야 하는 그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의무이다.
그럼 받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냐면 그것 역시 아니다. 주는 것처럼 받는 것도 의무다. 만약 거부하면 목숨을 건 결투 신청이나 전쟁 선포라는 엄청난 재앙에 맞닥뜨려야 한다. 나아가 ‘포틀래치’에는 규칙 하나가 더 있다. 선물을 받은 자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받은 것 이상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
가끔 컴포즈 커피 한 잔을 건네주는 단골이 며칠 전에도 자기는 아이스, 깎새 건 따뜻한 커피를 양손에 들고 점방을 찾았다. 따뜻한 커피만 고수한 적이 없는데도 따뜻한 커피 아니면 안 마시는 줄 알고 그것만 사다 주는 게 살짝 불만이긴 하지만 번번이 얻어먹는 게 고맙고 미안해서 깎새는 명절 전이고 하니 답례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침 단골이 커트에 염색을 세트로 주문했고 깎새는 7천 원짜리 일반염색약 대신 1만5천 원 하는 고급염색약을 단골 머리에 발랐다. 다 바르고 난 뒤 보답할 게 딱히 없어서 대신 염색약을 바꿔봤다고 실토했더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안 쓰일 리 없다. 바란 게 아니었을망정 신세가 쌓이면 마음의 짐도 따라 커진다. 일반염색 요금의 두 배가 넘는 염색약을 쓰고 생색을 냄으로써 약간이나마 그간 부담을 덜었으니 한결 가뿐해졌다. 1천5백 원짜리 컴포즈 커피 선의를 1만5천 원짜리 고급염색약으로 되갚았으니 이게 '포틀래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혼자 득의양양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