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Sep 17. 2024

망언다사

   별 탈 없이 잘들 지내는지 궁금하구먼. 무소식이 희소식이긴 하지만 엿가락 늘어나듯 격조가 길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지기 마련이라 그게 두려워서라도 명절을 핑계 삼아 간단한 안부를 전하려 하니 이깟 수고로움에 부담 갖진 마시길.

   나이를 먹어갈수록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따라 쌓이는 기분을 피할 수 없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뭘 하며 먹고 살까' 라는 생리적 욕구가 여전히 최대의 난제로 상존한 까닭에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굴리는 현실은 절박하긴 하네. 떼돈은 못 벌었을지언정 가만히나 있었음 반반하게는 지냈을 직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허송세월로 날려 버린 지난 이십여 년이 아쉽고 아까우며 딱하지 않다면 거짓말일세. 적금을 여투듯 실속을 차곡차곡 챙기는 셈속이 눈곱만큼이라 있었던들 지금처럼 먹고 사는 문제로 노심초사하지는 않았을 텐데, 유령처럼 찰싹 달라붙은 착잡함으로 괴로운 심사야 자업자득이니 누가 누구를 탓하겠나.

   하지만,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라 썩 와닿지는 않겠으나, 밥만 먹고 살 거면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아니 될 터. 지난한 열패의 세월 속에서도 패자를 각성시키는 그 무엇을 그런대로 인생의 값비싼 교훈 하나쯤 여기고 희망고문인 줄 뻔히 알면서도 꽉 부여잡고 있다네. 그게 무엇인고 하면, 바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럽고 연해졌다는 걸세.

   시절이 수상하여 그에 따라 사는 형편이 제가끔 달라지니 제 사정에 쫓겨 아전인수격 외로 틀기를 일삼다 근근이 지탱하던 관계망까지 성글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네. 궤도가 너무 오래되어 타성적으로 겉돌다 결국 결별에 이르는 그 어정쩡한 이탈을 원심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이기적인 행태에 섭섭하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지. 헌데 그리 비분강개하던 나 또한 따지고 보면 제 논에 물을 대기에만 급급했을 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변심자의 입장을 따지고 보려는 의향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냉정하긴 마찬가지일세.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입장을 바꿔 그 불가피성을 추적해 들어가 '오죽하면 저럴까'란 공감에 착근하는 수고가 필요하고 그러자면 현실을 직시할 냉철함이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따라 필요하다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네. 데면데면해진 관계망이 어쩌면 예측불허인 우리네 인생살이의 한 단면쯤으로 마음을 탁 내려 놓는 게 어떨지. 하여 있는 그대로를 겸허하게 받아들임은 물론 그로부터 새로운 관계 설정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하고 말일세. 구심력으로 똘똘 뭉치든 원심력으로 튀어 나가든 우정의 맹아가 간신히라도 잔존해 있는 한 그것으로 족하다는 아량이 꼭 성인의 자질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칫 이대로 살다가 안 보면 그만이라는 체념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지 않는 바는 아니나 그보다는 나긋나긋하게 이완된 자세로 상대를 보다 편하게 바라보는 마음의 여백을 강조하고 싶네. 추석날 아침 종알종알 잔사설이 길었네. 망언다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