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건너 국방 예산이 1,000조에 가까워 천조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대통령이 새로 뽑힌다고 해서 깎새 점방 매출이 급신장될 게 아니면 누가 되건 무슨 상관이랴. 다만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천조국에서도 대통령 잘못 뽑아 식겁한 적이 있었으니 미국 제29대 대통령 워런 하딩(1865~1923)이 그 장본인인데 재임 시절 행적을 찾아보니 가관도 아니더만.
워런 하딩은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다. 당시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윌슨 대통령의 삽질 등으로 상당히 지쳐 있던 미국 실정이라 공화당에서 누가 후보로 나오건 대통령 당선은 따 논 당상이었는데 공화당 내 선두 후보 2명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며 교착 상태에 빠지자 결국 공화당 계파 보스들이 선택한 제3의 인물이 오하이오주 무명 의원이었던 워런 하딩이었다. 공화당 내에서 어떠한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워런 하딩은 그나마 "대통령답게 생긴" 미남자여서 유권자들의 순간판단을 흐리게 했으니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으나 후대에 이를 '워런 하딩의 오류'라고 일컫는다나.
하딩은 자기랑 가까운 사람 아무한테나 중요한 일을 맡겼다. 하딩 가족에게 신문을 배달하던 측근을 백악관 수석 군사보좌관으로 뽑았고, 이웃집 친구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앉혔다. 보훈국장이 된 찰스 포브스는 하딩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와이 여행을 한번 같이 간 사이라고 했다.
하딩이 임명한 사람들은 나랏일은 뒷전이고 제 잇속을 차리느라 바빴다. 내무장관 앨버트 폴은 거액의 대출을 받고 석유 개발 이권을 기업인에게 넘겼다. 하딩이 숨진 뒤 밝혀져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티포트돔 스캔들’이다.(<나는 역사다-무능이 죄가 된 '최악의 대통령'>, 한겨레, 2024.08.01에서)
워런 하딩은 재임 2년 3개월만에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돌연사했는데, 심장마비란 설이 유력하다. 헌데 하딩이 죽은 뒤 뒷말이 무성했다. 칼럼 내용을 마저 옮겨 보겠다.
하딩이 죽은 뒤 그의 방탕한 사생활도 폭로되었다. 아내 말고 애인이 여럿 있었다. 1927년에는 애인 중 한명인 낸 브리턴이 자극적인 회고록을 출판했다. 하딩이 대던 생활비(와 혼외 자녀의 양육비)가 끊겼기 때문.
시민들은 수군댔다. 스캔들이 터지기 앞서 평판을 지키려 영부인이 하딩을 독살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하딩이 죽자마자 영부인은 서류를 파기했고 부검도 거부했다. 죽은 뒤 여러 해 동안 밝혀진 일로 하딩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하딩은 행정부의 부패에 개인적으로 연루되지 않았지만, 그의 유일한 죄는 완전한 바보였다는 점이다.” 입담 좋은 작가 빌 브라이슨이 꼬집은 대로다.(위 칼럼)
어째 어디서 많이 본 전개 양상이지 않나? 하지만 전혀 다르다. 소동극을 끝내는 키맨의 수준차가 너무 나서. 누구는 누구 때문에 수치심으로 괴로워했겠지만 누구는 누구보다 더 염병을 떠는지라 겹칠래야 겹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