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개념 중 ‘열등감과 보상’, ‘우월을 향한 노력’을 나름대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내가 남보다 못나고 덜떨어진 점들은 다분하지만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열등감이야말로 그런 나를 극복해서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다는 오기와 갈망의 방증이고, 그걸 밑천 삼아 내 부족한 면을 메워 나가려는 부단한 시도(보상)를 통해 지금보다 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다부진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우월을 향한 노력)이다’라고.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가 신전에 전차를 바쳤다. 왕은 그 전차를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단단하게 묶어 놓았다(고약한 심보로세). 당시 ‘전차를 묶은 매듭을 푼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하는 전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지역을 지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어떻게 했게? 단검을 꺼내 단칼에 끊어버렸다. 그러면서 우렁차게 일갈하였으니.
“운명이란 전설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 기시미 이치로 외,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173~174쪽
이른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에 얽힌 내용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로 들렸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 취득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역병 탓에 하반기 현장 실습 과목 이수가 불투명해져서 내년 초로 예정된 자격 취득은 난망하다. 온라인 동영상으로 수강하는 과목들은 거의 끝냈으니 그나마 위안이다. 동영상 수업은 대체로 재미랄 게 없어서 지루했다. 하지만 명칭(<인간발달과 사회환경>)은 다르지만 예전 직업상담사를 준비하면서 흥미롭게 봤던 인간발달이론 개괄이 들어 있는 과목만은 유심히 지켜봤다. 그 중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이론은 새삼스러웠다.
심리학을 건드리는 과목이다 보니 과제도 타 과목보다는 특이하게 내더라. 보고서 형식이 아닌 에세이 형식으로 과제를 제출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인간발달과 사회환경> 과목 과제 주제 중 나는 이걸 선택했다.
[아들러 개인심리이론에서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열등감’을 강조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열등감이 존재하고, 같은 열등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보상하는 방식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아들러의 주장을 참고한다면, 개개인의 열등감과 보상이 각자의 현재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열등감에 대해, 그것을 보상하려 노력했던 자신의 무수한 노력들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지금의 삶과 생활양식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성찰해보고 그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해 제출하세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작성해서 제출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글 쓰는 게 재밌었다. 뭔가를 끼적거릴라치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비록 잘 쓴다고 상을 받은 적은 별로 없지만 습작 노트를 마음 맞는 친구와 주고받으며 문학 소년의 꿈만은 계속 키워 나갔다. 1991년 부산 아무개 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해 합격한 건 그 꿈의 작은 결실이었다.
그러나 입학하고 1학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금껏 내가 끼적대던 짓이 우물 안에서만 놀고 자빠진 개구리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유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썩 유쾌하지 않은 자의식이 튀어나오게 된 계기는 또래답지 않게 벌써 문리(文理)가 트인 한 남자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국어선생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 박은 대학 1학년 때 이미 교내 대학신문이 주최하는 문학상에 시를 출품해 대상을 받았고, 학과는 물론 교내 문학 동아리에서까지 장래가 촉망되는 예비 문학인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문학 분야를 담당하는 학과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존재였다. 그가 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콱 박혔던 부끄러움과 좌절감은 지금도 여전히 내 심장을 아리게 한다. 그에 비해 나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쓴 격이었으니 '나는 아니로구나!'라는 결단을 내린 순간,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바로 접은 건 물론이고 이후로는 제 발로 들어간 학과였음에도 흥미를 잃고 어영부영 보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만다.
ROTC 장교로 전역한 직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총각 시절에는 적적한 타지 생활을 달래고자 줄기차게 이성 교제도 하고 재즈란 음악에도 심취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영위하면서도 꼭 해야 할 뭔가를 하지 않고 자꾸 미적대는 것 같은 찝찝함은 여전했다. 뭔가를 써야겠다는 욕구가 막 일었지만 당장은 기반을 닦아야 할 때라 딴 짓 할 새가 없으니 먹고 살기 편해지면 그때 가서 써도 늦지 않다는 따위 제 깐에는 그럴듯해 뵈는 핑계를 둘러대기만 할 뿐이었다. 나란 놈이 과연 글 쓸 깜냥을 가지고나 있는지를 끊임없이 회의하다가 볼 장 다 봤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서울 생활 오년 만에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부산으로 귀향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으로 신나게 달려갔지만 손대는 일마다 좌절을 겪다가 두 번에 걸쳐 금전적인 파탄에까지 이르자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내가 딱 그 짝이다 하는 자기환멸에 빠지면서 급기야 우울증 증세까지 엿보인다.
피폭 당한 듯 엉망진창인 주변 신상을 수습하려는 몸부림을 어렵게 어렵게 이어가던 어느 날, 쌓인 울분을 속으로만 삭이지 말고 차라리 토해 내는 편이 마음 다스리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라면서 글을 써서 SNS에다 게시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한 친구가 조언을 해줬다. 글을 잘 쓸 필요는 없고 인정받으려고도 하지 말라. 그냥 네 속엣말을 수다하게 털어놓아서 속이 후련해질 수만 있다면 그만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또 어디 있겠냐면서 말이다.
속는 셈 치고 그길로 펜을 들었다. 그리고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을 틈틈이 써내려 나갔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 평범한 나와 내 가족의 하루,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환경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일상에 대해서 생각나는 대로 데생했다. 글 쓰는 작업은, 단 한 자라도 끄적여 본 사람은 공감할 테지만,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결코 생각대로 써지질 않는다. 고쳤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하고 단어나 구절이 떠오르질 않으면 머리통이 바스러질 지경이다. 그래도 참 희한한 건 마른 걸레 쥐어짜듯 애면글면하는 동안은 온 잡념이 사라지는 무아지경에 취한다. 사람의 희로애락이 느껴지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랄까. 그러다가 내 눈 앞에 완성본이 떠억 하니 나타나면 지상 최대이자 최고의 희열을 만끽한다. 묵은 때를 벗기고 난 뒤 느끼는 후련함 같은 게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휩싼다. 카타르시스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임에 틀림없으리.
고무적인 건 오래 전부터 나를 옥죄던 선입견, 이를테면 글 쓰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둥 이왕 쓸 거면 고상하고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강박증 따위가 차츰 옅어졌다는 게다. 글을 일부 능력자들의 전유물로써 볼 게 아니고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만족하면 그만인 일종의 장난감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의 변화는 내게 있어서는 굉장히 획기적이다. 남이 내 글을 보고 감동을 느끼건 말건 그건 부차적인 문제로 오로지 쓰고 있는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하고 위로하는 길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웬만큼 글이 쌓이자 그걸 엮어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어처구니없었던 과거를 툴툴 털어 내고 예전 모습을 복구하려는 내 노력과 그러면서 좀 더 단단해져 가는 나를 글을 통해 강변하고 싶었다. 그게 비록 얄팍한 인정욕구의 발현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쌓아둔 글을 선별해 엮은 문서 파일을 이메일로 받아본 지인 중에 이참에 책으로 내보자며 크라우드 펀딩을 제안해 수십 명의 호응을 얻었다. 출판을 위한 자금이 모여지자 마침내 2020년 5월, 내 생애 첫 저서인 『일상』(새로운사람들, 2020)이 세상에 나왔다.
열등감으로 생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공교롭게도 글을 씀으로써 옅어졌다. 또 괴로운 일상에서 도피하려고 오용되었던 글은 쓰면 쓸수록 나를 진작시켰고 진작시키며 진작시킬 촉매제가 되었다. 더불어 세상과 계속 소통할 용기를 내게 해준 소중한 친구다. 글을 쓰면서 나는 살아있다는 삶의 환희를 진정 느낀다.
어느 날 동기 모임에서 만난 박이 언제 봤는지 내 글을 이렇게 품평했다.
"다사다난한 삶을 진솔하게 표현된 글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법이야. 글을 어떻게 쓰는가보다는 무엇을 왜 써야 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네가 보여 준 셈이다. 우여곡절에서 나온 네 감수성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점이 네 글의 매력이다."
역설적인 인생이다. 나를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들었던 녀석한테 상찬이라니. 그것도 내 글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