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by 김대일

이건 복음이로다! 썩 경건하진 않지만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접하는 즉시 자연스레 설복 당하는 복음. 사는 게 결단코 헛되지 않고 세상 속 나는 그 무엇, 그 누구와도 비교 불가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은혜를 받고 그런 내가 중한 것처럼 내 옆 사람 역시 귀한 집 자식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일깨우는 복음. 구겨진 옷가지를 빳빳하게 다리듯 세파에 짓이겨져 만신창이가 된 영혼을 말끔하게 구원을 받았으니 이게 복음이 아니면 뭐가 복음이란 말인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 버러지 같다고 여기는 자기혐오자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나는 위대하다. 얼마나 위대할까. 확률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 아버지의 정자가 내 어머니의 난자를 만날 확률부터 따져보자. 일단 아버지 쪽에서 만들어지는 1억분의 1그램짜리에 길이 0.5밀리미터의 정충 하나가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배설되어 1억에서 10억까지의 형제, 아니 친구, 아니 동료, 아니 경쟁자와 2시간 동안 경주하며 1초에 0.000007143센티미터의 속도로 무려 10센티미터의 기나긴 거리를 완주해낸다.

이를 후하게 쳐서 1억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하자. 그러면 내 어머니 쪽에서 직경 0.14밀리미터, 무게 0.001그램으로 정충에 비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난자가 동료 1백만 개 중 정자를 마중 나갈 기회를 가진 5백 개 가운데 하나로 선발되어 나팔관으로 향해 내려온다. 이 확률을 1백만분의 1이라고 하자. 1억분의 1과 1백만분의 1을 곱하면 10의 23제곱분의 1의 확률이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 역시 각자의 부모가 있었으므로 이 확률을 계산하면 10의 46제곱분의 1이 된다. 우리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는 부모가 없었겠는가. 그 부모는 부모가 없었겠는가. 그렇게 해서 제곱이 또 제곱이 되는데 64명의 조상이 나오는 7대, 2백 년의 세월로만 해도 10의 1,449제곱분의 1의 확률이 된다.(『내 몸의 신비』앙드레 지오르당, 이규식 옮김, 2002, 동문선 참조)

나의 경우 족보상 시조로부터 27대 손인데 그 조상 중 어느 한 분이 조금만 딴 생각을 했어도, 불문에 출가하셨어도 나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제사를 잘 지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로또에서 1등에 당첨될 수 있는 확률은 1/8,145,060이라고 한다. 내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위대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내 아버지의 정자이자 나의 한 부분이 언젠가 한 번은 일등을 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평생 한 번도 일등을 못해봤다는 못난 생각은 하지 말자. 내 옆 사람이 그렇고 그 옆의 옆 사람, 옆의 옆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평생 한 번도 일등을 못해봤을 거라고 무시하지 말자. 그들은 우주의 별보다 많은 숫자의 분모를 거느린 확률을 뚫고 태어난 위대한 존재들이다.

- 『성석제의 이야기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2013, 하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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