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대한 짧은 소감

by 김대일

거란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와 고려의 항복을 종용했다. 큰 충격에 빠진 고려 조정은 화친론자와 주전론자로 나누어진다. 화친론자는 할지론자라고도 하는데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거란에 떼어주고 항복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때 서희가 일단 거란의 의도가 뭔지 알고 난 다음에 항복을 하든 싸우든지 하자는 전략을 내세웠다.

소손녕과 담판을 벌인 서희는 거란의 목적이 송과 거란의 관계를 차단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전쟁을 끝내려고 했다. 그 대신 두 나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선결할 문제가 있는데, 고려에서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 일대를 여진족이 점거하고 있어 고려 사신이 거란으로 가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을 고려 영토로 편입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거란이 이를 수락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른바 강동6주를 얻는 개가를 올린다.

여기까지만 하고 끝내면 밋밋하다. 고려사 연구로만 한길을 걷는 역사학자 박종기의 「새로 쓴 오백년 고려사」(푸른역사)에는 서희 담판 이후 고려의 깨물어 주고 싶을 만치 영악한 실리 외교를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이때 고려가 송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방식도 아주 흥미 있습니다. 고려는 송에 사신을 보내 거란의 침입 사실을 통보하면서 원병을 요청합니다. 송나라에서 군사를 파견해줄 리가 없겠죠? 고려는 이를 이유로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단절합니다. 결국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거란과의 외교를 재개하는 조건으로, 강동 6주 지역을 얻는 영토의 실리를 얻습니다. 고려 실리외교의 한 전형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병 요청은 제 앞가림도 벅찬 송한테 보내는 결별의 미끼인 셈이다. 거란이 치근대는데 큰형이 손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여유 없다고? 알았어. 그럼 나도 내 살 길 찾아볼 테니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깔끔하고 영리한 결별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이후에라도 꼬투리 잡힐 게 없는 고려의 대송 외교는 요즘 시쳇말로 완전 쩐다!

우리나라 역사를 논한다고 하면 시기적으로 가깝고 친근한 조선을 염두에 두곤 한다. 아주 파편적인 한 장면을 소개했을 뿐이지만 어쩌면 고려가 조선보다 지금 우리와 더 닮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실리적인 태도,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쿨한 모습(고려가요가 말해 주지 않는가)은 박제화된 역사를 찢고 현재를 사는 내게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고려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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