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 머리 깎아주는 너 참 잘났다

by 김대일

어느 날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말했다.

“이보게! 내가 자네 친구에 대해 조금 전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그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잠깐만!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기 전에 우선 시험 세 개를 통과했으면 좋겠네. 세 개의 체라는 시험일세.”

“세 개의 체?”

“나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우선 사람들이 말할 내용을 걸러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네. 내가 ‘세 개의 체’라고 부르는 시험을 통해서지. 첫 번째 체는 진실의 체일세. 자네가 내게 전해줄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했는가?”

“아니, 그냥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을 뿐이야.”

“좋아, 그럼 자네는 그 얘기가 진실인지 모른다는 말이군. 그럼 두 번째 체를 사용하여 다른 식으로 걸러 보세. 이번에는 선(善)의 체일세. 자네가 내 친구에 대해 알려 줄 내용이 좋은 것인가?”

“천만에! 그 반대야.”

“그럼 자네는 내 친구에 대해 나쁜 것을 얘기해 주려 하고 있군.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실히 모르면서 말이야. 자, 이제 마지막 시험, 즉 유용성의 체가 남아 있네. 사람들이 내 친구가 했다고 주장하는 그것을 내게 말하는 것이 유익한 일인가?”

“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내게 알려 주려는 이야기가 진실도 아니고, 선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왜 굳이 그걸 말하려고 하는가?”

-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소크라테스와 '세 개의 체', 열린책들

일을 하다 보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한국의 현실을 개탄하고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위정자를 증오하며 저주를 퍼붓는 손님을 심심찮게 본다. 동네 이발소라는 데가 단골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측면이 없지 않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자기의 정치 성향에 맞장구를 쳐주는 점포 주인이다 싶으면 갖은 요설로 치미는 울화를 맘껏 배설해 머리도 깎고 스트레스도 해소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림으로써 매출 증대에 기여하는 바를 모르지 않는다.

허나 한 사람이 내뱉는 말이 화자의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 정도로만 여긴다면 지극히 단순하고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나만 알아듣는 독백이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귀로 흡수되어 새로운 작용 혹은 반작용이 나타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말하기 직전까지도 발화가 타당한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기는 옳다고 여기는 그 말이 다른 사람한테는 혹시 비수로 변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 모르는 일이다.

학원에서 무료이발을 하던 중이었다. 머리를 덜 깎았다며 수정을 요청한 40대 사내한테 나는 무심결에 여기서 더 깎으면 병신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 사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커트보를 격하게 풀더니 "병신 머리 깎아 주는 너 참 잘났다 씨발새끼야!" 일갈하고는 그길로 나가 버렸다. 그 사내는 한 쪽 팔을 전혀 못 쓰는 장애인이었다. 나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신문, 포털 정치뉴스가 요새 특히 더 볼썽사납다. 여과하지 않은 비루하고 무지한 언사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을 함량 미달인 정치인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언론의 책임 또한 크다. 공정이라는 미명 하에 찌라시감도 안 되는 저질 기사를 양산해내는 언론의 행태, 기레기를 자초했다고밖엔 볼 수 없다. 소크라테스와 세 개의 체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이다. 말하려는 자여, 진실하고 선하며 유익한지부터 먼저 걸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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