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五味가 구존具存

by 김대일

남자를 불에 비유하는 유머는 에로티시즘에 기댄 측면이 크다.

10대: 부싯돌(불꽃만 일어난다)

20대: 성냥불(확 붙었다가 금세 꺼진다)

30대: 장작불(강한 화력에다 새벽까지 활활 타오른다)

40대: 연탄불(겉으로 보면 그저 그래도 은은한 화력을 자랑한다)

50대: 화롯불(꺼졌나 하고 자세히 뒤져보면 아직 살아있다)

60대: 담뱃불(힘껏 빨아야 불이 붙는다)

70대: 반딧불(불도 아닌 게 불인 척 한다)

80대: 도깨비불(불이라고 우기지만 본 놈이 없다)

남자의 성적 능력, 즉 정력의 성쇠를 불에 빗대 인생 주기별 남성상을 묘사한 것 같은데 글쎄, 실없이 웃고 넘기면 그만이지 공감은 별로 안 간다. 그 이유로 성적 욕망만으로 남성을 규정하는 발상 자체가 일단 불만이고(여성을 과일로 비유하는 유머 역시 메스껍기는 마찬가지다) 본질적인 것보다는 지엽 말단에 초점을 맞춘 경박함으로 설득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서다. 차라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변모해가는 라이프 스타일에서 그 특징을 추출해 내 전형화하는 수법이 더 돋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요렇게.

자네는 지금 여편네 맛이 단 줄루 알 테지만 그것이 본맛이 아닐세. 여편네는 오미五味 구존具存한 것일세. 내 말할게 들어보려나.

혼인 갓 해서 여편네는 달기가 꿀이지. 그렇지만 차차 살림재미가 나기 시작하면 여편네가 장아찌 무쪽같이 짭짤해지네. 그 대신 단맛은 가시지. 이 짭짤한 맛이 조금만 쇠면 여편네는 시금털털 개살구루 변하느니. 맛이 시어질 고비부터 가끔 매운맛이 나는데 고추 당초 맵다 하나 여편네 매운맛을 당하겠나. 그러나 이 매운맛이 없어지게 되면 쓰기만 하니.

- 홍명희, 『임꺽정 4권』, 사계절, 315쪽

세상살이 간난고초를 겪다 전사로 차츰 거듭나는 여성상을 비유한 글은 여성의 탁월한 진화력을 말하는 듯해 의미심장하다. 냉철한 현실 인식, 변화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적응해나가는 기민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족을 위한 가이없는 헌신성이야말로 여자의 변신은 무죄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대문호조차 '오미가 구존'하다는 표현으로써 칭송해 마지않는 거라고 나는 읽었다. 멀리 찾을 필요 없이 내 마누라만 봐도 이 비유가 얼마나 딱 들어맞는지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인터넷의 바다를 암만 찾아 헤매도 위와 같이 해학적이면서도 인간학적인 메타포로 남자를 그려낸 사례는 없었다. 그게 남자로서 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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