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가 어째서 원수가 되었는지 너희들 아니?

by 김대일

나른한데다 허기까지 지는 오후,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마냥 군것질거리를 찾는데 저쪽에서 두유 한 팩을 내밀면서 "먹고 떨어지세요" 한다. 얼음을 꽉꽉 채운 아이스박스 밑바닥에서 갓 꺼낸 사이다를 들이켠 것 같은 청량함이 확 몰려 온다. “이거라도 마시면서 시장기를 눅이는 건 어떨까요"나 “퇴근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따위 예의범절은 빼어나나 왠지 밋밋하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군더더기 말을 주워섬겼다면 무슨 감흥이 일어 내가 이리도 주절거리겠는가.

두유 팩을 건넬 때 스친 장난기 어린 표정은 별책부록처럼 그냥 주자니 섭섭해서 툭 내뱉은 입말과 더불어 자칫 데면데면해질 증여의 장면을 유쾌함으로 반전하는 데 성공했다.

입말과 글말의 여러 차이 중에 비격식성과 격식성이 있다. 입말은 대화 상대방에 따라, 대화 상황과 목적에 따라 격식적으로도 비격식적으로도 사용되나 대상이나 범위, 기회 등을 두루 고려해 보면 입말은 비격식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 비격식성으로 입말은 일상적인 장면에서 주로 사용되므로 자연스럽게 친교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노대규, 「한국어의 입말과 글말」, 국학자료원, 1996 참조)

개와 고양이가 어째서 저렇게 원수가 되었는지 너희들 아니? 예전에 백정이 어떤 양반하고 이웃해 사는데 그 양반이 똥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백정에게서 키를 갖다 쓰고 키값을 주지 않았더란다. 그 백정은 양반을 보면 키값을 내라고 조르고 그 양반은 양반보고 키값 달란다고 강호령질로 배기다가 나중에 백정도 죽고 양반도 죽었는데 백정의 넋은 개가 되고 양반의 넋은 고양이가 되었단다. 그래서 지금도 개는 고양이를 보면 키값을 내라고 키킥 하고 고양이는 양반이라고 양양 한단다.

- 홍명희, 「임꺽정 4」, 사계절


견묘지간의 내력을 정보 제공 차원의 건조한 서술로 일관했다면 베낄 필요가 전혀 없다. 재미가 너무 없으니까. 잠 안 자고 투정하는 손주새끼 달래려고 '옛날 옛적에'를 풀어내는 할배, 할매의 구성진 말투같은 입말이 착착 감긴다. 이런 글을 써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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