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흔하게 들리던 까마귀떼 우짖는 소리조차 삼켜 버린 듯한 적막감이 거리를 지배했다. 모든 것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진공 상태나 다름없는 점방 문 바깥 풍경은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라리 괴괴했다. 그때 지팡이를 짚고 누군가가 저쪽에서 등장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근처 병원 이름이 박힌 환자복을 입은 여자의 발걸음은 지팡이와 한몸인 양 굼뜨기 그지없었으나 침묵이 지배하는 세상과 맞짱이라도 뜨려는지 적막한 공간을 틈입하는 예리함을 뿜었다. 그렇게 천천히 세상은 균열되어 갔다.
또 다른 늙수그레한 여자가 등장해 여자를 막 추월해 가려던 참이었다. 여자는 행인을 향해 웃는 낯으로 아는 척을 했다. 단조로운 풍경이 일순 다채로워지는 순간이다. 하여 그 자연스러운 파격이 인상적이다.
깎새는 두 가지를 미루어 짐작했다. 환자복 입은 여자는 여기 사는 동네 주민이면서 산책 나온 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것. 그렇다면 한 발짝 한 발짝 디디며 주변을 느릿느릿 관찰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극히 천연덕스럽다. 물론 무료한 일상을 일거에 전복시킬 기똥찬 무언가를 염원하려고 지겨운 병상을 탈출한 저의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서도.
보행로 군데군데 아이 무릎 높이만큼 자란 잡초 앞에서 걸음을 멈춘 여자는 그길로 잡초가 난 땅 주변을 지팡이로 쑤셨다. 가만 보니 잡초를 수월하게 뽑으려는 사전 정지 작업인 모양인데 그 요령이 자못 노련했다. 대대로 땅 파먹고 사는 집안 태생인지라 김매기가 끝나야 그해 농사가 다 지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농사꾼 유전자가 유감없이 발휘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렇게 난 잡초를 그냥 지나치질 못할 뿐더러 그토록 노련하게 다룰 수가 없을 테니까. 잡초가 쉽사리 뽑히지 않는다. 기를 쓰고 뽑으려는 전의戰意는 가상하나 무력해진 악력이 병약해진 기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근근이 뿌리째 캐 탈탈 털어 인도 가장자리에 던져 두었다. 그만하고 가던 길 가면 좋으련만 여자는 뽑은 잡초 주변을 집요하게 뒤졌다. 그날 그녀를 북돋워 주는 치유책은 아마 제약製藥이 아니라 제초除草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