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비애

by 김대일

그제 오후 건물주 할매가 돌연 들이닥쳤다. 건물주가 나타나면 일단 떨떠름하다. 금지하거나 요구할 용건이 대부분이라서. 아니나다를까 월세 올려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친히 납신 거라는데 일방 통보나 다름없었다. 임차인 다루는 데 이골이 났는지 월세 올리는 명분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 일대에서 이만한 월세로 장사하는 데가 별로 없다고 포문을 연 뒤 길 맞은편 새로 오픈한 미장원 월세를 들먹였다. 잘 안 먹힌다고 여겼는지 제 건물 타코야키네 월세가 깎새보다 10만 원이나 비싸다며 깎새도 개업한 지 3년 반 됐으니 엇비슷하게는 맞춰 주는 게 상도의가 아니겠냐는 식으로 나름 균형감각을 뽐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월세 인상을 각오하고 있던지라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건물주가 내건 명분이라는 게 같잖아서 빈정은 좀 상했다. 맞은편 미장원은 점포 면적만 깎새보다 1.5배는 더 커 보였다. 그만한 크기에 들어갔음 응당 그에 걸맞은 월세를 지불하는 게 당연하다. 허나 업종이 비슷하다고 월세까지 비슷해야 한다는 논리는 얼토당토않다. 타코야키네가 깎새보다 월세를 10만 원 더 비싸게 지불하는 건 맞다. 건물주는 일단 5만 원만 올려 생색을 내려 하지만 결국 세 들어 있는 모든 점포의 월세를 타코야키네 수준에 맞추려는 사전 포석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어서 깎새 입장에서는 꼭 죽을 날 받아 놓은 사형수 처지와 다를 바 없어 서글프기까지 했다. 지난 3월 임대차 계약이 자동 갱신될 무렵 언질을 줬더라면 불요불급한 비용을 줄여 인상에 대비했을 텐데 하는 야속함이 컸다. 이럴 줄 알았다면 두 달 전에 설치했던 CCTV는 당연히 재고했을 테고.

임대차계약 당사자에게 있어 월세 인상은 중차대하면서 첨예한 사안이다. 적당하게 구색 갖춘 자리에서 적당하게 밀당하다 적당한 결론에 합의해 조인식 악수하는 장면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 묵데끼 후다닥 해치우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5% 초과 제한 룰을 아주 우습게 넘겨 버리는 월세 인상률을 제시받고도 딱히 맞받아치지 못한 깎새는,

- 언제부터요?

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10월부터 적용하겠다는 건물주 대답에 당장 다음달이 아니라서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을의 비애를 절감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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