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 코빼기도 안 내미는 이방인들이 작년까지만 해도 제법 적잖이 점방엘 드나들었다. 베트남 청년은 한국말을 거의 못했다. "안녕하세요"나 "얼마예요?"가 그의 입에서 나온 한국말 전부였다. 친구일 뿐이라고 극구 강조하는 여자(아주 짧은 영어로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여자한테 물었더니 "just friend"라는 답만 돌아왔다)와 함께 온 적이 있었던 게 파격이라면 파격일 만큼 생김새가 말쑥했고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다만 동남아 특유의 참머리 때문에 손품깨나 들었던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손짓, 발짓 다 동원해서 한국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더니 말끝에 '유니버시티'라고 해서 인근 사립대학교 교환학생인 줄 알았다. 두어 달 주기로 꼭 들르던 청년이 발길을 끊은 건 아마도 유학 기간이 다 되어 제 나라로 돌아가서이지 않을까 혼자서 짐작할 뿐이다. 인연이라면 얕지 않은 인연인데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쯤, 아니 작별인사쯤은 괜찮지 않았을까?
베트남 청년 못지않게 단골 축에 끼었던 필리핀 사내는 상대적으로 한국말이 유창한 편이었고 깎새가 한국말로 하면 말귀를 거진 알아먹기도 했다 신통하게도. <범죄도시 2>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괜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가 "욕하지 마! 한국말 다 알아!"하던 베트남 경찰이 자꾸 떠올라서 말을 조심조심 가리려고 애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땅딸막한 체구에 가무잡잡한 피부가 핸디캡일 만도 한데 입성이며 머리스타일을 뜯어보면 깔롱지기기 대마왕이었다. 장발을 선호해서 깎새더러 (그런 사투리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쪼매만' 골라 달래서 원하는 대로 해주긴 했지만 영 마뜩잖았다. 깔롱이 아무리 우선이기로서니 두상에 맞아야 어울리는 법인데 말이다.
'약은 약사에게, 머리는 깎새에게!'
깎새 깜냥으로 그 어려운 구호를 알아듣기 쉽게 구현해내기란 불가능했다. 대신 필리핀이 영어를 쓰는 나라라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어서 안 되는 영어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I Think, (거울 앞에 붙여둔 헤어스타일 사진 중에 ②스포츠형에 가까운 높은 상고형, ③젠틀맨 스타일인 중간 상고형을 주책없이 까불듯 번갈아 가리키면서)two or three choice, You best hair style. OK?"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다음에, 다음에"라고 한다.
"This summer 싹둑싹둑. OK?"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다짐을 받으려고 했더니,
"알았다니깐."
안 되는 영어로 애써 씨부렸더니 귀찮다는 듯이 대꾸한다. 제기랄.
올해 들어 외국인 손님 상대로 재미를 전혀 못 보는 까닭이 혹시 필리핀 사내한테 부렸던 괜한 오지랖 여파로 인한 것인가 싶어 당혹스러운 깎새. 한국에서도 부산, 부산에서도 개금동에 모여 사는 이방인들은 필시 그들끼리 통하는 네트워크 커뮤니티가 있기 마련일 테고 만약 거기서 이런 주의문이 돌았다면 두문불출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식대로 헤어스타일을 강요하는 꼰대 깎새가 주인인 점방이 근방에 있으니 각별히 유의할 것. 그래 가지고서야 어디 밥이나 벌어먹을지 모르겠슴.'